이 자료는 1893년 11월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농민군 간부 20여 명이 정읍군(지금의 정읍시) 서부면 송두호(宋斗浩)의 집에 모여 각 리(里)의 집강(執綱)을 수신자로 하여 관에 정소(呈訴)를 준비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1968년 12월 4일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古阜面) 송후섭(宋後燮)의 집 마루 밑에 70여 년 동안 묻힌 족보에서 발견되었다. 송후섭은 송대화(宋大和)의 아들이다. 송대화는 사발통문에 서명하였고, 동학농민혁명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 사발통문은 원본이 아니라 뒷날 씌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송대화가 갑진년(1904)에 동학이 ‘합법화’한 이후 고향에 돌아와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발통문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계사년(1893) 11월에 돌린 일반적인 민란의 경우와 유사한 통문으로 앞 부분에 있던 본문의 내용은 떨어져 나가고 서명자만 남아 있다. 당시 서명에 참가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
全奉準(全奉準) 宋柱玉(송주옥) 黃贊五(황찬오) 李成夏(이성하)
宋斗浩(宋斗浩) 宋柱晟(송주성) 金應七(김응칠) 孫如玉(손여옥)
鄭鍾赫(정종혁) 黃洪模(황홍모) 黃彩五(황채오) 崔景善(최경선)
宋大和(송대화) 崔興烈(최흥열) 李文炯(이문형) 林魯鴻(임노홍)
金道三(김도삼) 李鳳根(이봉근) 宋國燮(송국섭) 宋仁浩(송인호)
두 번째 부분은 “민중들은 기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글이다.
세 번째 부분은 송두호의 집에 모여 “①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효수할 사(事). ②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사. ③ 군수에게 아부해서 인민을 침어한 탐리(貪吏)를 격징(擊懲)할 사. ④ 전주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향할 사” 의 내용으로 결의하는 부분이다. .
참고문헌
신용하, 1993, 「고부민란의 사발통문」,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 일조각
배항섭, 2002, 『조선후기 민중운동과 동학농민전쟁의 발발』, 경인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