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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록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이 증언록은 역사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다시피는 녹두꽃』(1994)과 『전봉준과 그의 동지들』(1997)을 원문 그대로 탑재한 것으로
동학농민혁명 전공 연구자들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유족을 직접 만나 유족이 증언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포수로 1차 봉기부터 가담한 최윤주, 손자 병두
대상인물

최윤주(崔潤柱)

1870. 12. l1~1948. 4. 1. 자는 상일(祥逸). 수성(隋城) 최씨(崔氏). 전남 영광군 삼북면 부성리 560에서 출생.

증언인물

최병두(崔炳斗)



1929. 6. 20~ . 초등교육계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사회교육사업에 종사. 4남매를 모두 서울대학에 보냄.

1957. 11 19~ .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현재 외무부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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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도
가계도 이미지
정리자

출전

전봉준과 그의 동지들

내 용

최윤주는 농민군 주력부대가 1차로 전주성 가까이까지 진출했다가 회군하여 흥덕, 고창을 거쳐 영광으로 들어가는 무렵, 곧 4월 10일 전후한 시기에 농민전쟁에 가담하였다. 최윤주는 경제면에서나 신분면에서 대부분의 농민군들과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의 출생지는 영광군 삼북면인데 현재는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 560번지이고, 나의 출생지는 327번집니다. 할아버지는 농사도 짓고 사냥을 하셨어요. 화승총, 그 분들은 화승포라고 했어요. 직접 총을 가지고 사냥도 다니시고 또 기술이 목수였어요. 건축도 하셨어요. 다양하셨지요. 또 한학보다는 한글을 잘하셨고요. 특히 삼국지 같은 것을 많이 읽으셨고, 기운이 좋고 성격이 호탕하시고 기골이 장대하시거든요. 한번씩 호령하시면은 함성이 커서 포사장군이라고 밖에서 호령하시고 진두지휘하시고 그랬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포수로서 사냥을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빈농계열이었던 듯하고, 한학보다는 한글을 더 잘하였다는 데서 당시 최윤주의 집안이 처해 있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골이 장대한 신체적 조건과 호탕한 기질로 말미암아 그 자신 동학교도는 아니었지만, 농민전쟁에 앞장서서 가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동학에 입도는 안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광 쪽 접주가 그것을 명령이라 하는지 모르겠는데 참전을 해라, 그래가지고 고창서 흥덕을 거쳐서 혁명군이 진주할 무렵에 영광 쪽으로 가셨답니다. 도중에 동네이름이 영광군의 화산(현재는 장성군 소재), 복평(福坪), 우평(牛坪)을 거쳐가시면서 청년들을 기병시켰다고 합니다. (기병할 때는) 동네 어구 정자나무 앞에 모여서 소리를 지른답니다. 우군이여! 소리를 크게 지르면 동네 청년들이 모여가꼬 그다음 지역으로 가시는데 영광까지 가는 데 수백 명이 모였답니다. 포를 쏘면서 갈 때는 자신이 깃장(기수)이 되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최윤주는 농민전쟁에 가담한 직후부터 타고난 기질을 발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농민군 주력부대는 4월 16일부터 20일까지 함평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부는 무안으로 진출하는 등 그 세력범위를 확대해가고자 하였다. 이때 최윤주는 무안으로 진출하여 무안의 농민군을 규합하는 특수임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그야말로 절정입니다. 영광으로 모이셔가꼬 거기 있는 혁명군하고 같이 합쳐서 함평으로 갑니다. 함평까지 가셔가지고 특수부대 기병을 많이 했다고. 몇 명을 골라 가지고 무안군 몽탄까지 가셔서 기병을 하시고 함평으로 돌아와 가지고.

그 후 최윤주는 농민군 주력부대를 따라 장성으로 진격하였다. 여기서 농민군은 농민전쟁의 전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전투를 치르게 된다. 4월 7일에 있었던 황토현 전투에서 영군(營軍)을 격파한 바 있는 농민군은 장성에서 최초로 경군(京軍)과 맞서 싸워 승리함으로써 사기가 고양되었고, 의식 면에서도 크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최윤주는 이 전투에서도 맹활약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가 1894년 4월 23일 무렵이었다.

정성 전투. 황룡 월평 전투에서 아주 발군의 공을 세우셨답니다. 삼계면 예계리(?)에 사시다 돌아가신 정장렬 씨라는 분이 이런 얘기를 잘 아시는데 ‘니 할아버지가 별명이 황룡 전투의 영웅이다. 그렇게 공을 많이 세우신 분이다’(라고 하였다). 그런 말을 어려서(초등학교 1학년 때) 들은 적이 있어요. 장태라고 닭 기르는 장태에다 지푸라기를 넣고 양쪽에서 굴리고 가면 중간에서 (관군을 향해 총을) 쏘아서 많은 관군을 할아버지가 쓰러뜨렸다고. 저쪽에서 쓰는 총탄은 안들어오고. 그리고 명중률이 참 좋으시니까 훨씬 더 공을 많이 세우셨다고.

이후에도 최윤주는 농민군 주력부대와 함께 전주성에 입성하였으나, 그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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