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1891년 10월 서인주와 서병학 등이 주도하여 공주와 삼례에 동학교인들이 모였다. 이들은 억울하게 죽은 교조 최제우의 명예를 회복(즉, 교조신원)시키고 동학포교를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공주취회’라고 불리는 이 모임은 동학 최초의 신원운동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후 동학도들을 위한 교조신원운동은 1893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1월의 광화문 복합상소, 3월에는 보은 장내리에서 약 3만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이러한 요구는 관의 회유와 탄압으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지만, 동학의 단결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