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상주 소모영의 유격대장인 김석중은 상주와 경상도 북부 지역만이 아니라 충청도 영동·청산·보은 등지로까지 진출하여 농민군 진압에 앞장선 인물이다.
11월 19일 보은군(報恩郡) 장내후동(壯內後洞)으로 진결한 김석중은 봉산접주(鳳山接主) 김민이(金民伊)와 금천(錦川) 접주 원성팔(元性八)을 체포하였고, 20일 새벽 4시 경에는 다시 상주 평온리(平溫里)로 돌아와 김달문(金達文), 강만철(姜萬哲), 김철명(金哲命) 등을 체포하였다. 김석중에 따르면 이 가운데 김민이는 “거괴”로서 사녀(士女)를 묶어 협박하고 재물과 곡식을 약탈한 것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며, 무리 수천 명을 일으켜 김자선과 함께 청주를 함락하려고 했고, 원성팔은 손으로 사족을 때려서 이빨 두 개를 부러뜨렸으며 양반의 부인을 겁탈하고 그 무리와 같이 그 무리들과 함께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강제로 무리에 들게 하였다고한다. 또 김달문은 노비로서 주인을 욕보여 삼강오륜을 범하는 죄를 저질렀으며, 김철명과 강만철은 동학에 입도한 지 10년이 지났으며, 밤마다 하늘에 제사지내 동학이 부흥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원성팔·김달문·김철명·강만철은 다음날인 11월 20일 정오에 광주원에서 총살되었으며, 김민이도 같은 날 봉암(鳳巖)에서 총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