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로고

SITEMAP 전체메뉴

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영양 동학접주 박학래 집 터
  • 지 역
  • 경북
  • 주 소
  • 경북 영양군 영양읍 지평길 39-4(감천리 591-2번지) 밀양박씨 재실
  • 문화재
  • 시도지정문화재(기념물) 
  • 분 류
  • 기타
  • 정 의
  • 박학래가 영양에 있는 삼수당(三秀堂)을 인수해 학초정(鶴樵亭)이라 이름 붙이고 살았던 곳
관련 역사적 사실
박학래(朴鶴來, 1864~1942)는 자는 중화(仲化), 호는 학초(鶴樵)이다. 그는 경상도 예천, 순흥, 경주, 청송, 영양 등지에서 살아왔고, 1894년 동학접주로서 무장봉기에 참여했다고 한다.
학초전(鶴樵傳)을 살펴보면, 그는 용궁관아(龍宮官衙)를 점거해서 무기를 탈취할 때 직곡접을 이끌고 참가하였다. 그 직후 최맹순의 근거지인 소야(蘇野)에서 열린 도회(都會)에도 참여하였다. 예천 집강소와 극단의 대치 상태에서 열린 화지도회에서는 모사대장(謀士大將)으로 가세하였다. 동학농민군과 예천 집강소는 8월 28일 커다란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서정자(西亭子)전투에도 앞장서서 참여하였다.
박학래는 서정자전투 패전 후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피신을 하였다. 가족들과 헤어져서 깊은 산골 마을에 들어가 은거했으나, 아버지와 함께 충청도 접경 마을에서 관포군에게 잡혀갔다가 식채를 내고 풀려나기도 했다. 타지인 경주에 가서 약방을 경영하여 생활의 안정을 찾았으나, 동학 가담 사실을 안 사람들이 연이어 찾아와 협박하고 돈을 갈취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고증내용
이 建物은 朝鮮中期인 孝宗때에 지은 亭子와 살림집으로 亭子는 처음 三秀堂이라 하였다가 近年에 所有主가 바뀌면서 鶴樵亭으로 바꾸었다. 뒤에는 갓등산이 둘러있고 앞에는 半邊川이 흐르는 아늑한 자리에 西南向으로 자리잡은 이 建物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亭子가 놓이고, 그 안쪽에 살림집이 있다. 亭子는 正面 3間 側面 2間의 八作지붕으로 2間의 溫突房과 4間의 대청마루로 되어있다. 세부 建築樣式은 一般的인 朝鮮中期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대청의 後面과 왼쪽의 板子壁 사이에 난 두짝의 울거미 널문은 가는 중간설주가 세워져 古式의 技法을 남기고 있다. 살림집은 口字形을 基本으로 하면서 前面이 兩側으로 突出한 形態로 嶺南 內陸地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祠堂이 있었으나 撤去된 것을 除外하고는 朝鮮時代 이 地方 上流階層의 住宅 모습이 잘 남아있는 建物이다. 2021년 5월 현재 정침은 보수 중이다.
논저
논문명(서명) 저자/필자 발행연도 쪽수
英陽의 얼, 영양군청 문화공보실/영양문화원 1991
사진(1)

영상
드론VR 사진에 마우스를 올려서 움직여보세요
지도
참고문헌
연관 유적지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ㅣ 사업자정보확인 404-82-08587 ㅣ 통신판매업신고 2023-전북정읍-0046호

문화체육관광부 전북특별자치도청

예약하기예약

찾아오시는길오시는길

위로

조직도 조직도

조직도 유족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