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연락처
기념재단
TEL. 063-530-9400
박물관
TEL. 063-530-9405
기념관
TEL. 063-530-9451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로고

SITEMAP 전체메뉴

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용인 김량장터 동학농민군 집결지
  • 지 역
  • 경기
  • 주 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133-28 , 133-37번지 일대
  • 문화재
  • 분 류
  • 기타
  • 정 의
  •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용인 지역 농민군이 활동했던 거점
관련 역사적 사실
경기도에는 1862년부터 동학이 전파되었으며 188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퍼졌다. 1893년 3월 보은집회 때 경기도에서는 광주·파주·송파·수원·용인·안산·안성·양주·여주·이천·죽산 등 10개 고을에서 모두 수천 명의 교도들이 참여하였다. 보은집회를 마치고 돌아갈 때 경기도에서 참가한 동학도는 수원접 840여 명, 용인접 200여 명, 양주와 여주 등 지역 270여 명, 안산접 150여 명, 송파접 100여 명, 이천접 400여 명, 안성접 300여 명, 죽산접 400여 명이었다.
1894년 9월 18일 동학 교단의 기포령 이후 경기도 각 지역의 농민군 지도자들에는 편의장(便義長)은 이종훈(李鍾勳), 안성의 임명준, 정경수, 양지의 고재당, 여주의 홍병기 신수집, 임학선, 이천의 김규석, 전일진, 이근풍, 양근 신재준, 지평 전태열 이재연, 광주의 염세환이었다. 용인 접주들은 정경수, 홍병기, 이종구, 신형경이었다.
호남 지방의 농민군이 움직이고 해월 최시형이 9월 18일 기포령이 내려지기 경기도 농민군은 이미 9월 9일 안성과 죽산 관아를 점령하였다. 조정에서는 이 지역 농민군 진압을 위해 9월 10일 경리청(經理廳) 영관 성하영(成夏泳)과 장위영(壯衛營) 영관(領官) 이두황(李斗璜)을 각각 안성군수와 죽산부사에 임명하여 농민군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서울에서 삼로로 내려오기 시작한 경군과 일본군의 남진로 상에 자리잡은 경기도 용인, 안성, 죽산, 장호원 등지와 충청도 진천, 괴산,음성 등지의 동학도들은 9월 중순경 청산에 집결하였다. 최시형은 9월 18일 기포령을 내렸다. 10월 16일 양호우선봉이 회인에 있을 때 포교들이 잡아 바친 동도 7명은 청산 도회에 참가했다 돌아온 동학 농민군이었다. 안성의 신덕보, 용인의 이청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9월 29일 안성과 이천의 농민군이 진천 관아를 습격하여 수령과 서리 관속들을 결박하였고 군고를 부숴 무기를 빼앗았다. 관군의 보고로는 농민군 수가 수만명이라고 하였다. 진천군수는 자신의 목을 찔러 자결을 시도하였다.
10월 초에는 충주.안성.죽산의 농민군 4-5만 명과 음죽의 농민군 1만여 명이 광혜원에 모였다고 한다. 경기도 안성 죽산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의 경기도 농민군 주력은 경기도에서 경군이나 일본군과 맞서 싸우지는 않았다. 광혜원과 황산에 집결했다가 일본군의 추격으로 보은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11월 19일 소모관 전동석에게 요인에서 붙잡힌 차대연.김왕인.이영준.최경식.강치구 가운데 차대연과 김왕인은 안성접주 정성택과 두어 달 동안 머물다가 용인으로 진을 옮긴 상태였다. 용인의 농민군이 안성의 농민군과 함께 충청도 쪽으로 이동하여 행동했음을 보여준다.
고증내용
9월 21일. 당일 밤에 들어 보니 “직곡과 김량 등지에 비도의 접주와 접사가 각처에 자리잡고 살면서 그 세력이 성대하다”고 하였다. 때문에 삼경(밤 11시-오전 1시)에 참령관 원레록, 대관 박영호, 별군관 이겸래에게 군사 100명을 인솔케 하여, 먼저 그 지역으로 보냈다. 이내 후진을 통솔하고 야간을 틈타 뒤따라 가서 직곡에 있는 접주 이용익의 집을 빙 둘러싸고 동도 14명을 붙잡았다. 또 김량에 있는 이삼준의 집을 포위하여 6명을 붙잡았다. 이들을 압송하는 길에 양지읍에 도착하였는데, 시각은 이미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9월 22일. 동도 20명을 일일이 취조하였다. ...이삼준은 다년간에 걸쳐 광혹이 골수에까지 스며들었다. 때문에 (4명을) 본읍(양지) 앞 큰길 왼편에서 총을 쏘아 사살함으로써 사람들을 경계하였다. (<양호우선봉일기>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7, 4-5쪽)
(죽산부사 이두황이 9월 21일에) 용인현의 장교 최재철의 보고를 받았는데, 그 내용에 “용인현 직동, 김량동 2개 동에 동학 접주가 행패를 부려 시끄럽습니다”라고 하여, 그날 밤 11시에서 1시 사이에 그대로 출발하여, 장교인 최재철에게 길을 안내하게 하였으며, (9월 22일)직동에 도착하여 접주의 집을 포위하고 수색하여 잡으려 하였는데, 소위 접주 이관업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갔으며, 그 무리인 이용익 등 15놈을 잡았습니다. 이어서 금량동으로 향하여, 이삼준 등 5놈을 잡아서 앞으로 나아갔으며, 양지읍에 도착하니 이미 날이 밝았습니다. ... 이삼준은 본래 금량동에 살고 있었으며, 동학에 속아서 미혹된 것이 여러 해가 되었고 골수에까지 침입할 정도입니다. .... 양지현의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큰 거리에서 처결하였습니다.(<갑오군정실기><<동학농민혁명신국역총서>>6, 126쪽)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및 기념시설-강원.경기.서울.경남.울산.경북.대구>>(에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 2010. 12) 용인 김량장터를 현재 용인 중앙시장 일대로 비정하고 있따. 근거 자료를 확인하지 못했다.
논저
논문명(서명) 저자/필자 발행연도 쪽수
경기지역의 동학과 동학농민군활동 최홍규 2002
경기지역 동학혁명과 동학군의 참여과정 성주현 2005
경기지역 동학혁명운동 표영삼 2005
1894년 경기도 지역의 변란 상황과 동학농민군 진압 과정 신영우 2017
사진(4)

영상
드론VR 사진에 마우스를 올려서 움직여보세요
지도
참고문헌
연관 유적지
이 페이지에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도를 평가해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는 재단이 되겠습니다.

(56149)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동학로 742

TEL. 063-530-9400   FAX. 063-538-2893   E-mail. 1894@1894.or.kr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ㅣ 사업자정보확인 404-82-08587 ㅣ 통신판매업신고 2023-전북정읍-0046호

문화체육관광부 전북특별자치도청

예약하기예약

찾아오시는길오시는길

위로

조직도 조직도

조직도 유족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