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경상도 서남부는 지리산 일대의 깊은 산간지역에 흩어져 있는 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일대는 1894년 서부경남 지역 동학도들의 중심지로서, 그 중에서도 덕산을 비롯 삼장·시천·사월·청암이 대표적이었다. 과거 시천은 현재 진양과 산청군으로 나뉘어 있으나 원래 진주에 속해 있었던 곳으로, 1862년 진주 농민항쟁 역시 덕천강 일대의 축곡·수곡·시천·덕산·삼장 등지의 초군과 농민들이 중심세력이었다.
현재의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는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로 알려져있다. 2014년 천도교 진주시교구는 경상대와 함께 현장 조사와 문헌연구를 통해 1894년 4월(음력) 초 시천면 내대리에서 백낙도 대접주(大接主)를 중심으로 500여명의 동학농민들이 봉기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지역에서 시작된 영남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진주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산청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2015년 10월 이곳 시천면 내대리에 ‘동학농민혁명 영남지역 발상기념비’를 세웠다. 산청군에서도 2019년 9월 ‘산청군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산청이 영남지역 최초의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지도자로 백도홍이 있는데 그는 1893년 3월 보은 집회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백도홍은 1894년 4월 중순경 체포돼 효수되었는데, 이 지역의 농민군들은 남원 혹은 순천과 광양을 지역적 기반으로 한 김인배 부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청지역의 농민군들은 백도홍 처형 이후 별다른 활동이 없었으나 7-8월경에 다시 봉기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7월 중순 단성현 단계리 일대에는 남원 쪽에서 넘어온 농민군들이 크게 출몰하였고, 8월 2일경에는 산청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9월 1일 이후부터는 순천의 영호도회소 농민군 부대가 진주 방면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상황에서 진주 일대 농민군이 대대적으로 봉기해 활동했다. 그 결과 9월 하순부터 10월 하순 사이에 서부경남 지역에서는 대·소규모의 전투가 연이어 벌어졌고, 그 중에서도 10월 14일 수곡 고승산 전투가 대표적이었다. (김양식 교수의 구술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