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10월 16일 김개남이 이끄는 농민군 수천명은 전주를 출발하여 청주로 가기 위하여 22일에 금산에 이르렀다. 이때 농민군은 진산의 방축리를 거점으로 각지에서 몰려든 농민군들이 합세하여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때 금산의 민보군은 소모관 정두섭이 지휘하는 포수 200명을 비롯하여 정지환, 한홍규 등이 소라니재를 방어하고 있었다. 농민군은 민보군을 부수암까지 유인하여 민보군의 전열을 흔들어 놓은 다음 소라니재를 공격하였다. 전투는 22일 낮에 시작되어 24일 오전까지 계속 되었다. 이 소라니재 전투에서 민보군은 100여명(수백명)의 사망자를 내고 패배하였다.
고증내용
이 소라니재 전투가 일어난 소라니재(송원치)는 진산면의 만악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만악리의 지리적인 위치는 북으로 복수면 다복리, 추부면 용지리와 접하고, 동으로는 금성면 두곡리, 상가리와 접하고, 남으로는 금성면 화림리와 접하고, 서로는 진산면 엄정리, 부암리와 접한다. 소라니재는 탱석동에서 금석동 상가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하는 지명이다. 즉, 금산에서 서북쪽으로 약 7km 떨어진 곳으로 진산으로 가는 68번 도로의 중간에 위치한 고개이다. 이 고개를 경계로 금산군 금성면(상가리)과 진산면(만악리)이 나누어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