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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정읍 산외 지금실 김개남 거주마을
  • 지 역
  • 전북
  • 주 소
  • 전라북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618-1 일원
  • 문화재
  • 분 류
  • 기타
  • 정 의
  • 동학농민혁명의 최고지도자 가운데 한 명인 김개남이 태어난 마을
관련 역사적 사실
이곳은 전봉준(1855~95), 손화중(1861~95)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한 최고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김개남(金開男, 1853~94)이 동학농민혁명 당시 살던 마을이다. 일찍이 이 마을은 생가가 있던 마을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김개남의 생가는 그의 종가가 있었던 정읍시 산외면 정량리 쪽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량리 출생설은 이 마을 출생인 송월주 스님의 모친이 증언한 바 있다 하고 김환옥 옹(김개남의 손자, 작고), 김영철 옹(1998년 91세로 작고), 고 표영삼 선생(천도교 수석 선도사 역임), 정진호 씨(전 산외 초등학교 교장) 등을 통해서도 고증됨으로써 그 신빙성을 더해가고 있음
이 마을과 정량리 일대에는 그의 집안인 도강 김씨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 가운데 김개남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 장군 휘하에서 접주로 활동한 도강 김씨가 24명에 이르렀다고 함
김개남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백산대회에서 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군 총관령으로 추대된 김개남은 되었다. 그는 황토현전투, 황룡촌전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전주화약 이후 남원에서 금산, 무주, 진안, 용담, 장수 등 전남 좌도 지역을 장악하고 폐정개혁에 나섰다. 2차 농민봉기 때에는 공주로 진격하는 전봉준과 합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11월 10일 청주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패배하고 말았다. 김개남은 군대를 해산한 뒤, 매부 서영기가 살고 있던 종성리 너디마을에 은신하고 있었다. 그는 이웃마을에 살고 있던 임병찬이 전라감사 이도재에게 신고하여, 12월 1일 새벽 체포당하고 말았다. 전라감사 이도재는 12월 3일 전주에서 임의로 처형하였는데, 이때 김개남의 나이 42세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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