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김제 원평은 전라도 남부에서 전라감영으로 들어가는 지리적 요충지이다. 1894년 3월 20일 무장기포 이후 고부 백산 일대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농민군은 전주성 공격에 나서기 위해 군량과 군기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3월 29일 밤에는 태인관아를 점령하고 4월 1일 정오 무렵에는 원평으로 진군하여 마을 앞 냇가에 진을 치고 하루를 머물렀다. 이어 4월 2일에 금구관아에 들어가 공형들을 결박하고 군기를 탈취하였다. 이어 전주성 점령 후 농민군들이 들어가 폐정개혁을 실시하고자 하였으나 금구관아에서 농민군을 체포, 처형하자 전봉준은 원정을 통해 금구현형 김명수의 파직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고증내용
「수록」,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3, 2008, 11쪽
4월 초 5일에 도착한 부안현의 공형이 문장으로 급히 보고한 내용에 의하면
4월 4일 오시(午時) 무렵에 동학도 수천 명이 또 금구현 원평으로부터 도착하였으며 금구현에 이미 모여 있던 무리들과 합세하여 동헌으로 돌입하여 공형들을 결박하고 군기를 탈취하였다는 내용
「영상일기」,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5, 2009, 28쪽
5월 초 3일
초토사 홍재희가 하읍(下邑)에서 비류를 추격하다가 금구(金溝)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금구현에 도착하였으나, 적들이 이미 전주를 함락시켰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