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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진안 상조림 동학농민군 전투지
  • 지 역
  • 전북
  • 주 소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 547 일대(정천면사무소)
  • 문화재
  • 분 류
  • 전투지
  • 정 의
  • 전북에서 동학농민군이 최초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곳
관련 역사적 사실
정천면과 부귀면 일대의 전투는 1894년 11월 9일 용담현 전투에서 승리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진주한 일본군과 접전하면서 시작됨
일본군은 1894년 11월 14일 히라키 조타로(白木城太郞)가 인솔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정천면 일대로 진격하여 동학농민군과 접전함
전투가 있기 전 11월 13일 동학농민군은 상조림 남쪽의 노래재에서 유숙한 후 용담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는데 상조림 아래 들판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임
전투는 전라북도 지역에서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이 첫 접전을 벌인 것으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의 화력을 과소평가함. 이 결과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신식화기에 30여 명이 사살되었고, 20여 명이 포로로 잡히게 됨
이 전투로 동학농민군인 서도필(徐道弼), 박만호(朴萬浩), 이만실(李萬實), 조윤삼(趙允三), 박치팔(朴治八), 김윤일(金允一) 등 6명이 사살되고 나머지는 석방된 것으로 기록됨
고증내용
「순무선봉진등록」 제4: 1894년 11월 22일. 교도 중대장이 보고합니다. …(중략)…14일에 용담 위의 조림(照林) 장터에 도착하여 몇 천 명인지 알 수 없는 저들 무리와 접전하여 3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포한 동도 20명 가운데 서도필(徐道弼), 박만호(朴萬浩), 이만실(李萬實), 조윤삼(趙允三), 박치팔(朴治八), 김윤일(金允一) 등 6명은 소란을 많이 일으켜 몹시 망측하였기 때문에 모두 총살하고 그 나머지는 타일러서 풀어주었습니다. 16일에 진안읍에 도착하여 또 저 무리 수천 명을 만나 한바탕 접전하여 수십 명을 사살하고, 17일에 고산 산천리에 도착하여 저 무리 수백 명과 접전하여 30여 명을 살해하였습니다.
「순무사정보첩」: 일흔다섯(1894년 11월 22일). 14일에 용담 위의 조림(照林) 장터에 도착하여 몇 천 명인지 알 수 없는 저들의 무리와 접전하여 3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도 20명 중에 서도필, 박만호, 이만실, 조윤삼, 박치팔, 김윤일 등 6명은 대단히 소란을 피워 극히 망측하기에 모두 사살하였고 그 나머지는 효유(曉諭)하여 석방하였습니다.
「갑오군정실기」 권6: 11월 26일. 교도소 병사는 일본군 중위 히라기 조다로와 함께 행군하여 14일에 용담에 이르러 저 몇 천 명이나 되는 무리와 접전하여 30여 명을 사살하였습니다. 그리고 생포한 동도 320명 가운데 서도필, 박만호, 이만실, 조윤삼, 박치팔, 김윤일 등 6명은 모두 총살하고 그 나머지는 타이르고 석방하였습니다.
논저
논문명(서명) 저자/필자 발행연도 쪽수
전주역사박물관‧진안문화원 2003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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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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