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동학교조 최제우가 천서를 받고 크게 깨우친 곳이다. 최제우는 경주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참된 도를 구하고자 했다. 수운은 양산, 울산, 경주 지방에서 수련을 멈추지 않았고, 1860년 4월 5일 마침내 도를 깨우치고 이후로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수운의 도는 3년여만에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교인들이 3천여명을 넘게 확산되면서 접소도 13개소로 늘었었으나 1864년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을 당했다.
울산은 부인 박씨의 고향으로 수운은 ‘여시바윗골’에 초가를 짓고 수련을 하던중 1855년 이인으로부터 받은 책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천도교단은 ‘을묘천서(乙卯天書)’라고 부른다. 수운의 대각을 기념하여 1997년에 천도교에서 ‘천도교 교조 대신사 수운 최제우 유허비’를 세웠고, 1999년에는 비각(碑閣)을 세웠다. 수운은 1854년부터 1859년까지 이곳에서 구도를 했다.
동학교단에서는 수운이 처형당할 때까지 머문 경북 경주 용담정, 수배를 피해 은둔하며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저술한 전북 남원 은적암과 더불어 동학의 3대 대표 유적지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