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정백현(1869~1920)은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 상여마을에서 정만원과 순천 박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름은 근영(족보), 자는 백현. 호는 약봉이다. 정학원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글솜씨가 뛰어났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중 격문, 통문, 행동규약, 폐정개혁 등을 작성하였으며 전봉준의 비서로 송희옥과 함께 활동하였다.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에서 패하자 가족은 무장면 옥산리 가라실로 이사하고 홀로 고창 신촌마을 친구인 봉정범의 집 골방에 은신하였다. 이후 서울로 피신하였고 판서 신헌구, 참판 이근용, 이중하 등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교유하였던 이희하가 무장현감으로 부임하자 귀향하여 아산면 주진리 오정동에 팔연정(八然亭)을 짓고 은둔생활을 하였다. 저서로 진암견문록(眞菴見聞錄)이 있다.
고증내용
제2편 해월신사 『천도교서』(第二編 海月神師)
10월에 신사가 각 포 도인을 불러 만나 보고 손병희로 하여금 각 포를 통솔케 하였는데 무장의 도인에는 송문수(宋文洙), 강경중(姜敬重), 정백현(鄭伯賢)이라는 내용
『파랑새는 산을 넘고 : 나라여, 백성의 소리를 들으라』, 김영사, 2008, 315쪽
정백현 : 격문 도맡아 작성, 봉기를 풀무질하다.
농민군은 1894년 3월에 무장에서 본격적으로 봉기하면서 첫 창의문을 발표해 대의를 천명하는데, 이 글은 정백현이 지도부의 뜻을 받들어 송희옥과 함께 지었을 것이며 이어 사대명의(四大名義) 등의 행동지침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정백현의 글솜씨가 발휘되었을 것이라는 내용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의 자기 증언이 나타난 주체의 형상」, 『한문학논집』 42, 근역한문학회 2019, 63~98
이이화, 『다시피는 녹두꽃』, 정명묵 증언
정백현, 『진암견문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