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동학농민군 진격로로 부안면 소재지로부터 22번 국도를 따라 서쪽으로 약 5Km 지점에 위치한다. 용산리 용흥마을 길 따라 올라가면 굴치재이며 내려오면 고창 북중학교 상오마을과 접하고 있다. 1894년 3월 20일 무장에서 기포한 농민군은 농민군들은 군량을 확보한 후 진격하기 시작하여 3월 21일부터 정읍·고부 방향 혹은 사포를 지나 줄포 방향으로 움직였다. 3월 22일 흥덕 후사포에서 하루를 숙영한 농민군은 굴치를 거쳐 3월 23일 부안 줄포로 향하였다. 이날 오전 10시경 머리에 황색 두건을 쓴 십여 명의 농민군이 미리 부안 줄포에 도착하여 점심 3천 5백 상을 준비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이어 점심때쯤 줄포 사정(射亭)으로 농민군 수천여 명이 들어왔고 오후 6시쯤 고부로 향하였다.
고증내용
「수록」 ,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 3, 2008, 49쪽.
5월 13일에 낸 고부의 보고에 의하면 동도 1,000여 명이 난산(卵山)의 저자에 모여 있으며, 50명에서 60명이 혹 태인 땅에 갔으며, 100명에서 200명이 무장의 굴치(屈峙)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내용
「양호초토등록」, 『동학농민혁명국역총서』 1, 2007, 154‧155쪽.
1894년(甲午) 4월 18일
동학농민군들은 무장(茂長)의 굴치(屈峙)로부터 각자 혹 4·50명, 혹 6·70명씩 패를 나누어 부안·흥덕·고부·정읍 등지로 급히 지나가니 즉시 군교·아전·관노·사령·포군 등을 단속하여 주의하고 상황을 보고하라는 내용-1894년(甲午) 4월 18일
[暴徒狀況]-prd_0128_230 ~ prd_0128_257 (262 ~ 289쪽)-동학농민혁명종합정보홈페이지
二十日此日德興里ノ市軍歸リ來リ曰ク
東學軍數萬茂長ノ屈峙ヲ踰ヘ興德ヲ
過キタリト翌日ハ高敞ニ集リ次第ニ西上シ 57) 1894.5.30.
全羅道古阜民擾日記 prd_0142_017 ~ prd_0142_030 (17 ~ 30쪽)-동학농민혁명종합정보홈페이지
-然ルニ飛報天外ヨリ來レリ、時ハ同月二十日、此日德興里ノ市軍歸リ來リテ曰ク、東學軍
數萬茂長ノ屈峙ヲ踰ヘ興德ヲ過ギタリト、翌日ハ高敞ニ集マリ次第ニ西上シ景勝ヲ探ル、蓋シ
意ハ彼ニ在リ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