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금성토평비(錦城討平碑)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나주성을 공격한 동학농민군에 맞선 나주 수성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95년 나주지역의 유림들이 주축이 됨
본래 나주목 동헌 정문인 정수루(正綏樓) 앞에 있었으나, 1930년 금성관 앞으로 옮겼고, 1976년 금성관 내 현재 위치로 옮김
비문은 나주의 대표적인 유림인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이 지음
비문의 내용은 동학농민혁명 발발 이후 나주성에 동학농민군이 들어오는 과정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으며, 나주목사 민종렬(閔種烈)의 지휘와 방어 계획에 대해 기록하고 있음. 그리고 나주에서 관군과 동학농민군 간 접전하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고 있음
고증내용
「난파유고」 권4 부록: 묘갈명(墓碣銘). 이 보잘 것 없는 나는 도통장 해남군수 정공(정석진)의 일에 대해 처음부터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중략)…비록 그렇지만 장군의 실제 사실은 금성토평비(錦城討平碑)에 실려있고, 또한 초토사 민공의 계문(啟文)에 상세하여 나중에 찾아볼 수가 있다.
「금성정의록」 을편: 토평비명 병서(討平碑銘 幷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