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역사적 사실
곡성 출신 기봉진(奇鳳鎭)은 구례에 1892년 동학을 전파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곡성에도 동학이 전파된 시기는 1890년대 무렵인 것으로 보임
동학농민군이 전주성 공략을 위해 세를 확장할 때 1894년 4월 19일 동학농민군 수천명이 옥과현(현 곡성군 옥과면) 관아에 들어와 무기와 곡식을 탈취하여 정읍으로 물러난 일이 있음. 이후 곡성에서는 성을 방어하기 위한 수성군이 조직된 것으로 보임
이후 1894년 6월 6일에는 김개남의 부대가 곡성읍내를 공격하였고, 7월 초에는 장성의 이사홍 부대가 곡성관아를 공격하여 군기와 재산을 탈취함
1894년 9월에는 제2차 기포를 준비하던 남원의 김개남은 곡성, 남원, 능주 등지에서 무기와 군량미를 탈취함
고증내용
「영상일기」: 1894년 6월 초8일, 동학도가 다시 도당을 모아 태인에서 순창으로 들어갔다. 이보다 앞서 순창군수 이성렬은 집으로 돌아갔다가 아직까지 관아에 돌아오지 않았다. 적들이 하루 머물다가 옥과(玉果)를 향해 갔는데, 담양, 창평, 동복, 낙안, 순천, 보성을 넘어 곡성으로 들어갔다.
「순무선봉진등록」 제6: 1895년 1월 2일, 공치선(孔致先)은 북부 북이면 상곡의 접주인데 또한 악질 괴수로서 곡성현의 무기를 빼앗았으니 그 범한 죄는 용서될 수 없습니다.
「순무선봉진등록」 제6: 1895년 1월 3일, 곡성에는 장위영의 부대가 지나간 뒤로는 다시 비류의 소요가 없습니다. 지난번에 경병과 일본 군대가 지나갈 때에 붙잡은 괴수 몇 명은 바로 장(杖)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 사이 도망친 몇 명은 본 읍에서 각별히 더욱 기찰하여 체포하겠습니다.
「남원군종리원」 부록 구례군교구사: 포덕 33년 임진 봄에 곡성군 기봉진(奇鳳鎭) 씨의 전도로 허탁(許鐸), 임양순(林良淳), 임태순(林泰淳), 조경묵(趙慶黙), 우공정(禹公鼎) 제씨가 선구자가 되어 포덕이 수 백호에 달하였다.
「선봉진정보첩」: 1895년 1월 17일, 공치선은 곧 북부 북이면 상곡의 접주인데, 또한 거악(巨惡)으로서 곡성현의 군기를 탈취하였으니, 그 범죄는 놓아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