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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정보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구례 광의면 동학농민군 집결지 (구례군 광의면 구만제로)
  • 지 역
  • 전남
  • 주 소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연파리 844 일대(광의면사무소)
  • 문화재
  • 분 류
  • 기타
  • 정 의
  • 운봉 민보군과 전투시 남원‧구례 동학농민군의 집결지
관련 역사적 사실
1894년 11월 14일 벌어진 방아치 전투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남원지역에서 일어난 최대 규모의 전투임. 남원 동학농민군을 이끌던 김개남은 2차 기포 때 주력군 5,000여 명을 이끌고 북상한 상황에서 남원에 잔류한 동학농민군과 운봉 민보군을 이끌던 박봉양 사이에 치러진 격전임
방아치 전투 이전인 1894년 10월 14일부터 남원 동학농민군과 운봉 민보군 사이에 전투가 전개됨. 10월 24일에는 박봉양이 이끄는 민보군이 남원성을 점령한 적도 있었지만, 대규모 동학농민군이 남원성을 향해 진격한다는 소식에 10월 27일 후퇴하기도 함
남원성을 재점령한 동학농민군이 경상도 지역까지 기세를 넓혀나가면서 운봉의 민보군을 치기 위해 1894년 11월 14일 대규모 공격을 준비함
이때 구례 동학농민군을 이끌던 임정연은 남원 동학농민군에 합류하기 위해 구례군 광의면 연파리에 집결함. 그러나 방아치 전투는 치열한 전투 끝에 농민군의 패배로 돌아감. 이 소식을 들은 임정연은 산동면 위안리를 거쳐 다름재를 오르다가 구례로 후퇴하게 됨
이후 구례 동학농민군은 1894년 12월 3일 구례 유생 이기(李沂)가 주도한 수성군의 공세에 밀려 와해됨
고증내용
「장계」: 경상도관찰사가 올린 장계(1894년 9월 30일). 17일에는 동도 수천명이 하동에서 본주(本州)에 왔기 때문에 병사(兵使)와 목사가 함께 성곽에 나가 한편으로는 방어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 타일렀으나, 많은 수의 무리들이 세력을 믿고 난입하여 각 공해(公廨)에 도소(都所)를 설치하였는데, 도통령(都統領)이라고 하는 정운승(鄭運昇)이 인솔한 수백명·중군장(中軍將)이 인솔한 400~500명·하동포(河東包)가 인솔한 700~800명·우선봉(右先鋒)이 인솔한 500~600명·후군장(後軍將)이 인솔한 400~500명·도통찰(都統察)이 인솔한 100여명과 그밖에 단성포(丹城包)·남원포(南原包)·섭천포(涉川包)·상평포(上平包)·오산포(吾山包)·구례포(求禮包)가 읍내에 흩어져 있어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박봉양경력서」: 운봉군전주서 박봉양경력서(雲峰郡前注書 朴鳳陽經歷書). 11월 13일에 군의 서쪽에 있는 관음치(觀音峙)의 방수장(防守將)인 전 주부(前主簿) 정두회(鄭斗會)가 와서 말하기를, 고개 아래 남원 산동방(山東坊) 부동촌(釜洞村) 앞에 성에서 나온 적들이 많이 모여서 장차 우리 경계를 넘어 침범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중략)…
「양호우선봉일기」 3: 1894년 12월 9일. 이 날 밤에 의병의 맹주인 이기가 잡아서 가둔 접주(接主) 임정연(林定然)과 접사(接司) 양주신(梁柱臣)을 본진(本陣)에 데려왔다. 그러나 그가 비류 4명을 함부로 죽였기 때문에 그를 잡아서 가두었다. 그래서 11월 14일 인시(寅時, 오전 3~5시)부터 15일 진시(辰時, 오전 7~9시)까지 교전하는 동안 곧바로 평정하지 못함을 한탄하며 같이 싸우는 사졸들과 하늘을 가리키며 맹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단검을 들고 죽음을 무릅쓰며 전진하여 눈앞에 닥친 저들의 괴수인 이용우(李用右)·박중래·고한상(高漢相)·조한승(曺漢承)·황경문(黃京文) 등 다섯 놈을 죽이자 적의 기세가 마침내 꺾였으며 아군의 사기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양호우선봉일기」 3: 1894년 12월 11일. 구례 의병 10여명이 진영을 따라와서 길을 인도하였다. 거리를 계산해보니 30리길이었다. 구례 접주(接主) 임정연(任定然)과 접사(接司) 양주신(梁柱臣)을 이 날에 해당 현의 남문 밖에서 죽였다.
「순무선봉진등록」 제6: 1895년 1월 초 3일. 장위영 부영관이 경군 800명을 거느리고 이달 초 9일에 구례현에 들어와서 그대로 하루를 머물고, 11일에 구례현의 동도 접주 임정연(林定然)·접사 양주신(梁柱臣)을 부대 앞에서 총살하고 순천부(順天府) 북창원(北倉院)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선봉진정보첩」: 구례현감이 첩보합니다(개국 503년 12월 28일). 장위진은 이 달 초9일 본현에 들어와서 그대로 하루 머물고 나서 11일 본현의 접주(接主) 임정연(任定然)과 접사(接司) 양주신(梁柱臣)을 군진 앞에서 포살하고 출발하여 순천부(順天府) 북창원(北倉院)으로 향한 연유를 이미 첩보하였거니와, 본현 경내의 이른바 ‘동도로서 불법자행을 더욱 심하게 하는 일곱 놈’을 계속 의병소(義兵所)에서 장위진의 영칙(令飭)에 의하여 죄인이 오는 대로 처단하였고, 그 나머지 비류는 거개 협종으로서 지금 이미 비류에 대한 행동을 그만둘 줄 알기 때문에 과연 다시는 방자하게 구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논저
논문명(서명) 저자/필자 발행연도 쪽수
「남원의 동학혁명운동 연구」 표영삼 1999
이상식 외 1996
무등역사연구회 2011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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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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