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탐지하여 23일 보고함 [二十二日探知 二十三日發報]
군수(郡守)께서 동학인들이 주둔한 진영에 가서 질문하기를 “이번 이 도회소(都會所)를 창의(倡義)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동학을 금지하고 단속하라는 일을 조정의 칙령과 감영의 공문으로 여러 차례 엄중하게 보냈는데, 일제히 돌려보내지 않고 무리들을 불러 모아 이러한 도회를 거행한 것은 진실로 조정의 칙서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고, 큰 변괴와 관련된 것이니, 각각 뉘우치고 깨달아 즉시 해산하여 스스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대답하기를 “창의한 것은 결코 다른 이유는 없고, 오로지 왜와 서양을 배척하기 위한 의리이니, 비록 순영(巡營)의 칙령과 주관(主官, 보은수령)의 설득이 있어도 중단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동학은 처음부터 사술(邪術)이 아니며, 설령 사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임금이 치욕을 당하여 신하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면 충절과 의리는 하나이니, 각지의 유생들이 같은 마음과 뜻으로 죽기를 맹세하고 충성을 바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