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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가을 8월[秋八月]

1일 을사

저녁에 비가 내림. 이날 저녁부터 갑자기 서늘해졌다.

초 2일

개임. 평기 집에 계시는 아버지의 안부를 살폈다. 대교의 동비로 궁원에 가서 모였던 자들이 대교에 다시 모였다.

초 3일

서늘함. 풍동에서 한양으로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초 4일

서늘함. 며칠 전부터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초 5일

맑음. 동비가 연일 사람을 보내 돈과 쌀과 땔감을 요구하였다. 매일 3∼4명, 5∼6명이 와서 소란을 피웠다. 밤에 대교 중도에서 나왔다가 되돌아갔다.

초 6일

맑음. 동비가 1,000민(緡)을 토색질하여 가지고 갔는데 김영국(金榮國) 포(包)가 가지고 갔다.

초 7일

맑음. 동도(東徒) 김영국 포가 또다시 와서 돈 90냥을 요구하였다. 동비가 대교를 나와 평안해져 되돌아갔다. 동비가 잠시 해산했는데 서병학(徐丙學)이 와서 유시(諭示)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 8일

맑음.

초 9일

맑음. 평기 집의 안부를 살피고 본관(本官) 성주(城主, 공주목사)께서 와서 위문하였다.

초 10일

흐림.

11일

맑음. 10일의 일이다. 이날 저녁 삼기(三岐) 갈산(葛山)의 동비 30명이 와서 족제(族弟) 치삼(致三)을 찾았는데 만약 찾아내지 않으면 내가 같이 가야한다고 협박하였다. 밤에 갈산에 갔다. 종씨(從氏) 권성문(權聖文)이 나중에 도착하였다. 사과(司果) 임중경(林仲卿) 명로(明老)가 와서 만나보았다.

12일

맑음. 11일의 일이다. 아침 이후 갈산에서 되돌아왔다. 백씨(伯氏)와 숙씨(叔氏)가 왔다. 임여구(林汝九)·이덕경(李德卿)·임치경(林致卿)이 갈산에 와서 만났다. 이른 아침 평기의 동도(東徒) 서상학(徐相學)이 4∼5명을 거느리고 갈산에 왔는데 치삼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가 갔다.

13일

맑음.

14일

맑음. 계당에 갔다.

15일

맑음. 율동의 묘소에 오르고 평기 집의 안부를 살폈다.

16일

맑음. 오공동 묘소에 오르고 평기 집의 안부를 살폈다.

17일

맑음.

18일

흐리고 가는 비가 내리다가 저물녘에 개임.

19일

맑음.

20일

맑음. 평기 집에 갔다.

21일

맑음. 새벽에 본생(本生) 선비(先妣, 작고한 어머니)의 상례를 지낸 후에 정오 사이에 평기 집에서 되돌아왔다.

22일

백씨께서 사은숙배하기 위해 한양길에 올랐다.

23일

맑음.

24일

맑음. 넷째 아우가 왔다.

25일

맑음.

26일

조금 비가 내림.

27일

개임

28일

맑음. 평기 집의 안부를 살폈다.

29일

맑음. 가마꾼이 백씨께서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어 받았다.

주석
서병학(徐丙學) 학(學)은 학(鶴)의 오기이다. 서병학은 보은집회 시기 동학의 지도자였으나 농민전쟁 당시에는 관군의 앞잡이로 돌아서 동학교도 적발에 앞장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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