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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7월[七月]

초 2일

중제 자적이 한양에 있으면서 몇 해 동안 난리를 겪었다가 비로소 돌아와 몹시 고대하던 차에 비할 데 없이 기뻤다.

이달 상순 사이에 공주(公州)에 거주하는 송용주(宋鏞周)라는 자가 갑주(甲冑)를 찾는다고 일컬으며 와서 기동(耆洞)의 안산(案山) 마항현(馬項峴)의 암석을 캐내니 심히 괴이하다.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 “일본병사들이 동래에서 수륙 양쪽으로 진격하여 인천, 칠곡, 상주, 선산, 대구, 문경 등지에 가득 찼다. 좋은 곳을 엿보아 관사를 지으니 달성(達城)과 낙동(洛東) 같은 곳에 그대로 머물렀다. 해평(海平) 진사 최극삼(崔極三)의 집도 일본군이 빼앗아 거주하였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일본인이 임진왜란 때 인명을 많이 살상하였는데 공을 이루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그래서 금년에는 한 사람도 상해를 입지 않아 우선 인심을 어루만질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주석
해평(海平) 진사 최극삼(崔極三)의 집도 일본군이 빼앗아 거주하였다 일본군은 청일전쟁을 벌인 뒤 일본군의 물품 공급을 위해 교통로의 요소(80리)에 병참부를 설치하고 작은 단위(대개 40여명)의 군사를 주둔시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고 연락업무를 보기도 했다. 대구 근방인 달성에 병참소를 두었고 상주 부근에는 두 개의 일본군 병참소가 있었는데 낙동의 일본군 병참부(또는 소)는 지금의 상주시 낙동면 낙단교 옆 남쪽 제방 부근에 있었다. 또 당시 함창 태봉(지금이 상주시 함창면 태봉리)에도 일본 병참소가 있었고 선산 해평에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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