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十一月]
경군(京軍)이 내려와 보은(報恩) 장내(壯內) 동학 도소(都所)를 불로 태웠다. 이른바 법헌(法軒)이라는 자는 밤중에 도망치고, 그 나머지는 마침내 황간과 영동 등지에 모여서 인가를 노략질하여 거주하는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가 없다고 한다.
황간 수석리(水石里) 이판서(李判書)[용직씨(容直氏)] 댁은 여러 차례 협박을 겪어 손해가 거의 만금 정도였고, 심지어는 집안이 허물어졌다고 한다. 영동 을곡리(乙谷里)의 강사마(姜司馬) 두흠씨(斗欽氏) 역시 그 피해를 전적으로 받았고, 진사 아들이 구타를 당하여 이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27일
새 달력을 얻어왔는데 광서(光緖) 연호를 쓰지 않고 ‘대조선(大朝鮮) 개국(開國) 504년’으로 적었다. 이는 우리나라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 일본사람들의 핍박에 의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청나라를 배신한 혐의를 면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