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전 정언 장병익의 상소문 초고[二○五 前正言張炳翊疏草]
삼가 아룁니다. 신은 하찮은 재주와 학식으로 진실로 감히 조정에 참여할 수 없지만, 다행히 은혜롭게 벼슬살이를 하여 매번 보잘 것 없는 정성이나마 바치려는 마음이 절실하였습니다. 만약 성상의 다스림을 돕고 백성을 보호할 만한 일이 있다면, 어찌 분수에 지나친 것을 혐의하여 한마디 말을 제시하지 않겠습니까?
근자에 호남의 동비(東匪)가 난리를 일으켜 아직도 뼈에 사무치고 떨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하늘같으신 임금의 은덕으로 특별히 윤음을 내리시어 한 자루 칼에 피를 묻히지 않고 추악한 동류(東類)들이 다 흩어졌습니다. 비록 옛날의 간우(干羽)를 춤추었던 성인(聖人)이라 할지라도 어찌 이보다 더 낫겠습니까? 다만 시사(時事)가 매우 어렵고 생민이 매우 곤란에 처해 있으니, 황천(皇天)과 조종조가 우리 전하를 인애(仁愛)하시어 또 놀라고 두려워 덕을 닦고 반성하게 하는 것입니까? 옛날 상(商)나라의 중종(中宗) 때에 상곡(桑穀)의 기이함과 고종(高宗) 때 제사를 지내던 날에 꿩이 솥에 올라가 우는 재앙이 있었지만, 두 임금이 두려워하고 덕을 닦고 정사를 행하여 왕도를 다시 부흥함을 이루었으니, 오늘날에 두려워할 만한 일이 어찌 상나라의 두 임금의 정도에 비교하겠습니까? 신은 삼가 오늘날의 급선무를 조목조목 진달하겠습니다. 이는 기강을 확립하고, 탐욕을 징계하고, 재용을 절약하고, 사치를 억누르고, 상벌을 미덥게 하고, 군사 방비를 정비하고, 복을 비는 기도를 혁파하고, 언로를 넓히는 것입니다.
대체로 기강이라고 하는 것은 정령(政令)이 나오는 것이며 인륜 기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모든 관리의 여러 정무가 걸맞게 총괄됨으로써 그물에 벼리가 있고 갖옷에 옷깃이 있어 이를 들면 조리가 있고 놓아두더라도 문란하지 않은 것입니다. 조정이 위에서 법령이 해이해지고 귀천의 사이에서 명분이 사라져 관방(官方)이 이로써 어지러워지고 백성의 뜻이 이로써 두려워져 뒤죽박죽 섞여지고 흩어져 일마다 어긋나고 온갖 변괴가 솟아나와 수습할 수 없을 지경인데 이와 같은 데도 전아한 풍속으로 안정시키고 명예와 절개가 닦기기를 바라고자 하니, 그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수령이라는 자는 백성에게 임하여 교화를 펼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근자 이래로 백성에게 임하여 염치를 무릅쓰고 탐욕한 일을 자행하지 않은 바가 없으니, 각항의 상납을 1년마다 더 징수하고 이외에 명분이 없는 예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금을 달마다 분배하고 날마다 착취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터무니없는 일을 날조하여 백성들을 헤아릴 수 없는 죄에 빠뜨려 부유한 백성들은 전토와 가산을 탕진하고, 가난한 백성은 처자식을 팔아먹는 지경에 이르고,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원망하는 기운이 하늘에 닿아 있으니, 도적에 들어가거나 혹 사특한 무리에 붙게 되었습니다. 거주하면서 생업에 종사한 자도 자연히 편안히 있을 수가 없어 이따금 떼를 지어 싸움을 벌인다고 합니다. 오호라! 소와 양을 도살하거나 물고기와 자라를 칼로 토막 내어 음식을 만드는데 먹는 사람은 아무리 달고 좋다고 여기지만, 죽는 대상들은 매우 괴롭습니다. 만약 먹는 사람에게 칼날 아래에서 매우 애처롭게 울부짖는 짐승의 모습과 밥상 위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보게 한다면 비록 팔진미(八珍味)가 있더라도 반드시 젓가락을 던질 것입니다. 『서경』에,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이 견고하여야 나라가 편안하다’라고 하였으니, 나라의 근본이 이와 같은데도 난리에 이르지 않는 나라는 아직 없었습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방백(方伯)·수령을( )제수할 때에 모두 재물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재용(財用)이 군색하기 때문에 이를 행하더라도 조정이 백성을 배반함이 너무나 심한 경우입니다. 한(漢)나라의 무공(武功)과 당(唐)나라의 고신(告身, 임명장)과 같이 옛날에도 혹 그런 경우가 있었지만, 한나라는 더욱 피폐해지고 당나라는 세력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앞 시대의 역사적 교훈이 매우 분명합니다. 또 이해(利害)를 가지고 말하자면, 관직을 제수하고 납부금을 독촉하는 것은 그 이익이 매우 적고, 백성을 후히 대접하고 근본을 견고히 하는 것은 그 이익이 매우 많습니다. 백성의 생활이 부족하다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풍족할 것입니까? 지금 관직에 있는 자들이 권세를 믿고 거리낌이 없이 국가의 부세를 허비하며, 서로 승진하기를 도모하고 조세 상납이 연체되는 것은 주로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은 것이니, 어찌 전하의 돈을 훔쳐서 전하에게 납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국가로 하여금 끝내 국가의 부세를 잃게 하는 것이 괜찮은 일입니까? 백성들로 하여금 거듭 징수하여 백성들이 다 달아나 흩어질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이 괜찮은 일입니까? 지금 만약 해마다 벼슬했던 관리들을 조사하여 실정을 캐낸다면 각기 응당 징수할 바가 있을 것이고, 징수해도 부족하다면 그 친족들에게 징수하더라도 어찌 올바른 도리가 없겠습니까만, 유독 죄없는 백성의 경우에만 징수하는 것이 괜찮은 일입니까? 순량(順良)한 관리를 공정히 선발하여 몇 년 동안의 기한을 설정한다면, 곤궁한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보호하면서 잘 거두는 사람은 그 수고를 포상하여 승진시켜주고, 예전의 습관을 따라 백성들을 착취하는 자를 무거운 형률을 사용하여 죽을 때까지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각각 충성을 바치고 신구(新舊)의 부세가 하나도 지체됨이 없을 것입니다. 백성들도 생업에 편안하여 모두 어른을 위해 죽는 의리를 알아서 거느리면 쉽게 따르고 수고롭게 해도 원망하지 않고 윗사람을 마음속으로 복종하여 견고해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최근 대신들이 올린 차대(箚對)를 보건대, 수령을 잘 선택하고 탐욕을 징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다행히 아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상께서 내리신 하교에 ‘지방관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내용이 어느 때인들 그렇지 않았는가. 만일 백성들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먼저 탐욕을 징계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크도다. 임금의 말씀이여! 만약 혹 관습에 따른 형식적인 문구로 치부하면, 신은 아마도 중외(中外)에서 실망할까봐 두렵습니다. 운운(云云).
오늘의 국가는 바로 전날의 국가입니다. 재용을 생산하는 방도는 전날의 배가 되는데 곤궁한 형세는 오히려 또한 백배나 되니 그 연유는 어째서입니까? 진실로 무익하고 긴급하지 않는 비용이 전날보다 백배나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창고가 텅 비어 관리의 봉록과 군인의 봉급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음을 매양 근심하니, 갑자기 큰 기근이나 대규모 토목공사가 발생한다면 국가에서 장차 어떻게 대처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운운.
임금이 사치를 좋아하면 그 나라가 재앙을 입는다고 하니, 예로부터 제왕 중에 검소의 덕을 숭상하지 않고 흥기된 자가 있지 않았습니다. 운운.
오늘날 임금님께서 진어(進御)와 복식을 신이 감히 모르지만 다만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자의 말에 의하면, 궁중의 물품과 애완물, 연회에 소용되는 물품이 아마도 매우 사치스럽다고 합니다. 윗사람이 좋아함이 있으면 아랫사람은 더욱 그보다 더 심하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하인과 미천한 천인이 금은으로 꾸미고, 일반 서민들이 능라비단으로 몸을 두를 것입니다. 쌀 담는 병에는 저축한 곡식이 전혀 없는 자가 사치스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노인을 봉양하는 집에서 솜옷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비록 탈취해서 먹고 살인해서 취하여 사치한 후에야 그치게 될 것입니다. 대개 사치로 말미암아 계속 나아간다면 천하가 부족할 것이고, 검소로 말미암아 계속 행한다면 한 집안도 오히려 넉넉할 것이니, 사치를 금지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대개 상벌(賞罰)은 임금이 전적으로 사용하는 권세입니다. 상은 공로가 있음을 기약하는 것이고, 벌은 형벌이 없음을 기약하는 것입니다. 상이란 공로가 있음을 기약하기에 천하가 권면되고, 벌이란 죄가 있는 한 사람에게 내려야 천하가 징계됩니다. 만약 공로가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거나 죄가 있는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는다면, 이는 상벌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상벌이 미덥지 못한다면 권면과 징계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매양 보건대 공로가 없는 사람에게 상을 내려주는데 번번이 수만 금을 사용하고, 응당 징계해야 할 형벌에 대부분 죄를 따지지 않으니, 신이 이를 의혹스럽게 여깁니다. 소후(昭侯)가 덕을 닦을 때에 헤진 저고리를 보관하여 공로있는 사람을 기다렸으며,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부처를 숭상하여 살인자를 사면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두 임금의 잘잘못을 자연히 알 수가 있습니다. 무릇 군사방비는 나라를 유지하면서 반드시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비록 호남 동비의 자취가 잠잠하고 이웃나라의 수호도 좋다고 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 방비를 튼튼히 하는 것을 강구하지 않아서는 안될 일입니다.
무릇 복을 비는 기도는 밝음을 해치고 바름을 해치고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전하의 총명과 통달하심으로 어찌 참으로 요사한 술수에 의혹되어 믿겠습니까? 그렇지만 국가의 일이 많고 백성이 곤궁하여 혹시라도 국가에 도움이 있을까 하여 한번 시험삼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도술이란 결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신이 청컨대 본조(本朝)의 일을 가지고 말을 하겠습니다. 성묘(成廟, 성종)께서는 축수와 무당의 기우(祈雨)를 중지시켰지만, 다스리는 교화가 아름답고 밝으며 주변나라가 와서 곡물을 바쳤습니다. 선묘(宣廟, 선조)께서 금강산에 기우제를 지내고자 하여 호조(戶曹)에 쌀과 초를 지급하도록 하였는데, 담당 관원이 강력히 간언하여 이를 중지하였습니다. 영묘(英廟, 영조)는 무당과 중외(中外)의 음사(淫祀)를 금지시켰는데, 천수(天壽)를 누리시고 백성에게 은택을 넉넉히 내려주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열성조가 세우신 계획과 가르침을 계승하시니, 복을 비는 기도와 제사를 경계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운운.
무릇 언로(言路)란 총명을 넓히는 바입니다. 아버지는 바른 말을 하는 자식이 있는 이후에야 그 집안이 바르게 되고, 임금에게는 바른 말을 하는 신하가 있는 이후에야 그 나라가 창성한다고 합니다. 오호라! 언로가 막힌 상황이 근래와 같은 경우가 없어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또한 혹시 지극히 중요하고 간절한 말이 있더라도 발설하지 않습니다.
대개 이렇게 진술하는 내용이 모두 오늘날 급선무인데 더욱 시급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뜻을 세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어진 이를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좋은 계획을 받아들이고 훌륭한 계획을 진달하더라도 임금의 뜻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듣고서 그것을 쓸 수 있겠습니까? 임금이 아무리 노심초사하더라도 어진 사람이 직무를 맡지 않는다면 나라에서 이를 시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 두 가지는 근본이며, 사안에 제정하는 것은 쓰임입니다. 그 근본이 있으면 그 쓰임이 없음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뜻을 세운다는 것은 지성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올바른 도리로써 스스로 자임하고, 반드시 좋은 다스림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니, 옛 삼대(三代)와 같은 세상이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한 사람의 몸도 뜻을 세우는 것이 독실하지 않으면 스스로 수신(修身)할 수 없는데, 더구나 크나큰 한 나라의 경우 임금의 강건한 결단이 있지 않으면 다스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이른바 어진 사람을 구하는 이유는 수많은 백성을 한 사람이 혼자서 다스릴 수가 없고 반드시 어진 사람의 보필을 의지한 연후에야 그 일을 완성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부터 성왕(聖王)이 보상(輔相)을 구하여 직무를 맡기지 않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신중히 선택하여 전적으로 맡겨서 우러러 직무를 완성하게 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우뚝이 당세(當世)의 책무로써 자신의 임무를 삼으니, 그 권세가 중대하고 직무가 걸맞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신중하게 선택하지 않고 전적으로 직무를 맡기지 않아 재능이 있는지 여부를 시험하지 않는다면 보상을 두는 취지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일 ‘어떻게 그가 어질다는 것을 알아 등용하겠는가?’라고 말한다면,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부터 도를 실천하는 선비 중에 어찌 효성이 집안에서 이름이 나고, 행실이 고장에서 드러나고, 덕이 조정에서 나타나고, 절개가 일에서 나타났는데, 등용되어 도리어 패란(敗亂)을 초래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조정의 대신들을 불러서 오늘날의 일을 그대로 유지해서 세월을 보낼 것인지, 행동을 취하여 폐해를 바로잡아야 할지를 조용히 물어보소서. 만약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반드시 행할 것이라는 뜻을 보이시고, 해야 할 정무를 물어보시고, 잘 생각하고 힘써 행하소서. 세월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고 일은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행동을 하지 않아서는 안되는데, 잘해내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면, 넓은 한 나라에 어찌 예문(禮問)할 어질고 재능있는 사람이 없겠으며 조정에 어찌 토론할 만한 영특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임금과 재상이 마음을 합하여 지성으로 예법으로 대우하고 올바른 방도로써 찾는다면, 어질고 덕이 있고 도에 뜻을 둔 선비가 모두 등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널리 어진 이를 찾는 데에 힘을 쓴다면 비록 조그마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숨기는 바가 없을 것이니, 이와 같다면 선비가 더욱 귀해지고, 지키는 지조도 견고할 것이며, 염치가 있을 것이고, 풍속과 교화가 두터워질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인정은 나쁜 관습이 풍속을 이루고 서로 이끌어주면서 도를 찾아 스승을 구한다고 하니 이는 존귀한 이들이 부끄럽게 여기는 것입니다. 대개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천거하고, 시부(詩賦)를 기억하고 외우는 것으로 어진 이를 구하고 선비를 취하는 방도로 삼는데, 근자 이래로 과거의 폐단이 극히 한심합니다. 전후(前後)로 임금께서 타이르시는 말씀이 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래에서부터 농간을 피워 더욱더 심합니다. 전과(殿科)의 경우 중간에서 궁중의 미천한 것들이 오직 간사한 짓만을 생각하여 들리는 소문이 낭자하고, 설사 그 사이에 얻은 자가 올바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간사한 짓을 하니, 과거시험을 설치한 본래의 취지가 아닙니다. 더구나 선비의 습속이 온갖 방법으로 기망하니, 나머지는 족히 볼 것이 있겠습니까. 매번 참방(參榜)하는 사람을 보니, 집에 있는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자무식이 태반입니다. 나이를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면서 대부분 갑술년으로 되었습니다. 아, 오늘날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시험은 진사(進仕)의 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시대의 어진 사람을 임용하면서 당세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니, 북쪽으로 수레를 몰면서 남쪽 월(越)나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니, 또한 차이가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또 월과(月課)로써 말하자면, 정이천(程伊川)이 옛 제도를 자세히 살피고서 시험을 고쳐 과목으로 만든 것은 선비의 기상을 배양하기 위함으로, 이는 진실로 문장을 짓는 것만을 비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로 학행과 재기를 취하는 것은 당대의 쓰임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학행과 재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의 글을 빌리는 자도 있고 간청하는 사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폐습이 이어지는 것이 과연 다른 과거시험과 조금이라도 다름이 있습니까? 또 시과(試科) 33인의 수는 조종조에서 확고하게 정해놓은 제도인데, 이것에서 감하여 저것으로 충당하니 어찌 하겠다는 것인줄 모르겠으며 또 저것이 이것보다 낫다고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대체로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임금이 뜻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직 전하께서는 성스러운 뜻을 확고히 정하시고 반드시 제 시각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침소에 드시고, 또 전하의 몸을 보양하여 다스리는 방도를 구하는 데에 부지런히 하시어 가까운 친족에 빠지지 마시고, 여러 사람들의 입에 의해 미혹되지 마시고, 성의를 다하여 어진 이를 임용하셔서 각기 장점의 대소에 따라 등용한다면 즉시 효과가 나타나 직무마다 잘 시행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치 불을 때면 익지 않은 것이 없고, 씨를 뿌리면 생기지 않은 것이 없으니, 어찌 기강이 확립되지 않고, 수령이 탐욕하고, 재용이 넉넉하지 않고, 사치가 억제되지 않고, 상벌이 미덥지 않고, 무비(武備)가 닦여지지 않고, 기도(祈禱)가 바름을 해치고, 언로가 넓혀지지 않음을 걱정하겠습니까? 위로는 조종(祖宗)을 빛내고 아래로 백성들을 넉넉히 돌보고 부국강병하여 아름다운 명성이 멀리 전파된다면 천하가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아름다움이 끝없이 드리워질 것입니다. 더구나 동궁저하께서는 천품이 영특하고 뛰어나시며 덕스러운 용모가 순수하십니다. 뜻을 세우는 요점과 어진 이를 구한 방도를 잘 이해하여 알 수 있게 한다면 어찌 전하의 큰 복이 아니며 신민의 경축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자애로운 성상께서 신을 미천하다고 하여 이 말을 쉽게 여기시지 마시고, 한번 살피시어 만에 하나 터럭만큼이라 성조에 보탬이 있다면 신이 비록 망언했다는 죄를 받더라도 후회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비답하기를, “너의 말은 매우 거칠고 잡스럽다”라고 하였다.
정언(正言) 김만제(金萬濟)가 상소하여 안효제·권봉희·장병익의 세 상소문을 배척하였는데, 안효제는 안기영(安驥泳)의 여당(餘黨)으로 배척하고, 권봉희는 권정호(權鼎鎬)의 여당(餘黨)으로 얽어매고, 장병익 역시 부도(不道)하다고 논하였다. 안효제·권봉희·장병익은 유배를 보내 안치(安置)하고 집 주위에 가시나무로 둘러 막게 하였다. 승지 박순(朴淳)은 안효제의 상소를 봉입하였다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고, 안효제의 경우 유배지 주위에 가시나무로 둘러막게 하였다고 한다. 안효제의 상소가 나오자 권봉희 역시 상소하여 당시의 폐단에 대해 극언하여 전혀 기탄하지 않았는데, 상소문 원고를 볼 수 없으니 한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