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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8월 1일 병오 [八月 初一日 丙午] 맑음.

금현(琴峴)의 장청일(張淸一)도 입도(入道)하였다. 편지로 이전의 빚을 말하기에 가서 애걸하여 겨우 모면하였다.

8월 2일 정미 [初二日 丁未] 맑음.

가을 기분이 매우 촉박하였다. 금현(琴峴)의 장청일(張淸一)이 왔다가 갔다.

8월 3일 무신 [初三日 戊申] 맑음.

집에 머물렀다. 종숙(從叔)이 추곡(秋谷)의 본댁으로 돌아갔다. 날마다 듣는 것이 매우 송구스러웠다.

8월 4일 기유 [初四日 己酉] 맑음.

오지(烏池)의 족제(族弟)와 서산(瑞山)의 척숙(戚叔)인 이문영(李文永) 씨 및 영남의 배(裵)모라는 사람이 함께 와서 묵으며 입도(入道)를 강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종조(從祖)인 예와공(蘂窩公)의 제삿날이어서 아버지가 제사에 참석을 하려고 추곡(秋谷)에 가셨다.

8월 5일 경술 [初五日 庚戌] 맑음.

경춘(景春)이 왔다가 갔다. 개화동(開花洞)의 김씨 2명과 탑동(塔洞)의 김씨가 보러 왔다. 노룡동(老龍洞)의 이씨도 논 때문에 공갈을 치러 왔는데, 잠시 꾀를 내어 겨우 모면하였다. 해미(海美) 사람에게 1,000냥을 갚는 일은 날마다 괴롭지만 빌려서 메우기도 어렵고 매매할 것도 없어 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으니 이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 정한 날짜는 점점 다가와서 답답하고 근심스럽다. 그러나 기한을 넘기면 반드시 수십 무리[隊]가 와서 대단한 행패를 저지를 터인데,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숨을 쉬고 밥을 먹을 때도 편안하지가 않다. 서산(瑞山) 왕촌(旺村)의 친구 이주승(李周承)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이 친구도 이것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고, 곤경은 비교할 데가 없다고 한다.

8월 6일 신해 [初六日 辛亥] 맑음.

경춘과(景春)과 명실(明實) 및 독곶(獨串)의 김군보(金君甫) 등이 보러 왔다.

8월 7일 임자 [初七日 壬子] 맑음.

서산(瑞山)의 친구 임○준(任○準)과 족손(族孫, 손자뻘 되는 먼 일가)인 시환(始煥) 남매가 찾아왔다.

8월 8일 계축 [初八日 癸丑] 맑음.

아버님이 서산(瑞山)에서 돌아오셨고, 종숙(從叔)도 따라왔다.

8월 9일 갑인 [初九日 甲寅] 맑음.

사람들이 왔다가 갔다.

8월 10일 을묘 [初十日 乙卯] 흐림.

8월 11일 병진 [十一日 丙辰] 맑음.

가뭄이 심하여 비를 고대하였다. 석교(石橋)의 감역(監役)인 족형(族兄)이 찾아왔다.

8월 12일 정사 [十二日 丁巳] 맑음.

석교(石橋)의 감역(監役)과 함께 죽리(竹里)의 소헌(韶軒)에게 가서 하루 종일 감회를 나누다가 달빛에 소헌을 끌고 함께 돌아와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8월 13일 무오 [十三日 戊午] 맑음.

석교(石橋)의 감역(監役)이 돌아갔다. 죽리(竹里)의 오적성(吳積城)에게 갔다. 소 1마리를 잡았다.

8월 14일 기미 [十四日 己未] 맑음.

가뭄이 심하여 근심이 되었다.

8월 15일 경신 [十五日 庚申] 맑다가 오후에 비가 왔다.

각수(脚手)인 근(根)이 왔다.

8월 16일 신유 [十六日 辛酉] 맑음.

서산(瑞山)의 친구 임○준(任○準)과 족손(族孫) 시환(始煥) 및 탑동(塔洞)의 김성후(金聖厚)가 보러왔다. 일본 배[倭船] 30~40척이 근해(近海)에 무시로 왕래하거나 가까이 정박하기도 하여 인심이 더욱 어수선해졌다. 종숙(從叔)이 추곡(秋谷)에 갔다.

8월 17일 임술 [十七日 壬戌] 맑음.

밤늦은 오경(五更, 오전 3시~5시)에 목치(木峙)의 도인(道人) 6명이 와서 혼사(婚事)를 깨겠다 말하고 물러갔다.

8월 18일 계해 [十八日 癸亥] 맑다가 비가 왔다.

광암(廣岩)의 도인(道人) 모임에 가서 논에 관한 일을 말했다.

8월 19일 갑자 [十九日 甲子] 맑음.

다시 광암(廣岩)에 갔다.

8월 20일 을축 [二十日 乙丑] 맑음.

몽여(夢汝)와 적성(積城) 오하영(吳夏泳)이 찾아와서 함께 산후(山後)로 가서 갈두(葛頭)에서 묵었다.

8월 21일 병인 [二十一日 丙寅] 맑음.

정자동(亭子洞)의 사창(社倉) 도인(道人)모임에 가서 논문서를 찾았다. 종숙(從叔)이 돌아왔다.

8월 22일 정묘 [二十二日 丁卯] 맑음.

당진(唐津)의 이종(姨從)도 도인(道人)에게 한없이 곤란을 당하고 이사를 하러 이곳에 들어와서 이틀을 묵고 돌아갔다. 광문(廣文)의 하인을 서울에 보냈다. 다시 사창(社倉)의 도소(道所)에 갔다.

8월 23일 무진 [二十三日 戊辰] 맑음.

소헌(韶軒)이 찾아왔다. 도인(道人)이 도인이 아닌 사람을 잡아가서 입도(入道)하도록 위협하니 인심이 더욱 어수선해졌다. 약간의 남은 자들이 모두 입도하였고, ≪입도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100에 1~2명이었다.

8월 24일 기사 [二十四日 己巳] 흐림.

동학(東學)이 점점 극성스러워져서 입도(入道)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에 이르렀다. 입도하지 않으려는 자는 도인들이 잡아다가 결박하고 때렸다. 형세가 어쩔 수 없어 입도하였고, 지금도 입도하지 않은 자는 100명 중에 1명 정도였다. 패악을 저지르고 난리를 일으키는 것이 갈수록 헤아리기가 어려우니 참으로 한심스럽다.

8월 25일 경오 [二十五日 庚午] 맑음.

기은곶(其隱串)의 족제(族弟)인 명열(命悅)의 집에 갔다가 이동(梨洞)의 족숙(族叔) 집과 오지(烏池)의 족제(族弟) 집에 들렀다. 오는 길에 척제(戚弟)인 성전(聖全)의 집에 들렀다가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8월 26일 신미 [二十六日 辛未]

분지동(盆池洞)에서 이틀 밤을 묵었다.

8월 27일 임신 [二十七日 壬申] 맑음.

서산(瑞山) 율곡(栗谷)의 족제(族弟)인 용제(用濟)가 찾아왔다.

8월 28일 계유 [二十八日 癸酉] 맑음.

이 고을 수령인 김덕진(金德鎭)이 찾아왔다. 홍주(洪州)의 상중(喪中)인 조씨(趙氏) 한 무리[一隊]가 찾아왔다.

8월 29일 갑술 [二十九日 甲戌] 맑음.

주석
각수(脚手) 심부름꾼을 말한다. 본문에는 각수(脚數)로 잘못 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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