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계유 [十一月 初一日 癸酉] 비가 왔다.
병으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임신한 지가 6달인데, 밤에 낙태를 했다. 그 이유는 10월 11일에 연이어 3차례 도인(道人)이 와서 소란을 피웠고, 게다가 포성소리 때문이었다.
11월 2일 갑술 [初二日 甲戌] 비가 오다가 맑았다.
추곡(秋谷)의 종숙(從叔)이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영(陣營)에서 도망을 한 자들이 계속 전해오는 말을 들어보면, 이번에 홍주(洪州)에서 죽인 도인(道人)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였다. 죄 없는 목숨이 이처럼 헛되게 죽은 것은 비록 자신이 선택하여 죽음에 나간 것이라고 하더라도 매우 참담하다. 서산(瑞山)과 태안(泰安) 2개 읍에서 난리를 주동한 사람들이 많이 해를 입은 것 같다고 하였다.
11월 3일 을해 [初三日 乙亥] 흐림.
친구 임호준(任浩準)이 찾아왔다. 지곡(池谷)의 족형(族兄)인 검서(檢書) 관제(觀濟) 부자(父子)가 찾아와서 묵었다.
11월 4일 병자 [初四日 丙子] 맑음.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다. 당진(唐津)과 면천(沔川) 사이, 홍주(洪州)와 결성(結城) 사이에서 도인(道人) 중 절반이 동학을 등지고 유도(儒道)에 돌아갔다. 아! 사람이 궁박하면 근본에 돌아간다는 것이 이것이다. 헛소문에 움직이고 인심이 어수선해져서 난리를 피해 이런 지경에 들어간 자들이 날마다 소매를 나란히 하여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었다. 인생이 분주하게 방황하다가 끝내 이렇게 되니 매우 가련하다.
11월 5일 정축 [初五日 丁丑] 흐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11월 6일 무신 [初六日 戊寅] 비가 오다가 맑았다.
개옥자(蓋屋子) 망일사(望日寺)의 승려인 성준(性俊)이 보러왔다. 유도인(儒道人)이 점점 무리를 모아 도인(道人)이 매우 두려워하니 통쾌할만하다.
11월 7일 기묘 [初七日 己卯] 맑음.
5대조 할아버지의 제사여서 재계(齋戒)하고 제사를 순조롭게 지냈다. 수구리(水口里)의 강 선달(姜先達)이 찾아왔다. 도인배(道人輩)가 근거 없이 유도인(儒道人)이 되어 소문을 내고, 피난한 자들은 날마다 끌려가서 낭패를 보았다. 길에서 분주하게 서성이니 가련하다. 승려 성준(性俊)이 절로 돌아갔다.
11월 8일 경진 [初八日 庚辰] 맑음.
김몽여(金夢汝), 김봉순(金鳳淳), 김덕윤(金德潤), 김자정(金子正), 김명실(金明實), 척숙(戚叔) 문영(文永) 씨, 족형(族兄) 이제(履濟) 씨가 찾아와서 모두 묵었다. 오후에 조금 비가 왔다.
11월 9일 신사 [初九日 辛巳] 맑음.
손님들이 돌아갔다. 동네가까이의 사람들이 보러왔다. 경군(京軍)이 유도인(儒道人)과 힘을 합하여 도인(道人)을 토벌한다는 소문이 크게 일어나서 피난하는 자들이 꼬리를 이었다. 사람들이 대책[方略]을 물으러 와서 이 때문에 날마다 손님이 이어졌다. 어수선하여 분명히 말을 할 수가 없고 단지 안도하라는 뜻으로 자세하게 타일러주었다. 이 동네에는 평소에 도인이 없어 다행스럽다.
11월 10일 임오 [初十日 壬午] 맑음.
하루 종일 사람들이 보러온 것은 피난하는 방도를 묻기 위해서였다.
11월 11일 계미 [十一日 癸未] 맑음.
유도인(儒道人)이 홍주(洪州) 4곳에서 와서 유막(儒幕)을 100보(步)마다 자리를 마련하여 서로 호응하게 하였다. 도인의 수괴(首魁)를 잡아 유막에 보내고 다시 홍주읍으로 보냈기 때문에 도인의 기세가 점차 위축되었다.
11월 12일 갑신 [十二日 甲申] 흐림.
도인(道人) 괴수(魁首) 중에 죄가 있어 용서할 수 없는 자는 잡아다가 유막(儒幕)으로 옮기고, 다시 홍주(洪州)로 보내 형벌을 집행하여 사람들을 경계하였다. 원두동(原頭洞)의 동회(洞會)에 갔다.
11월 13일 을유 [十三日 乙酉] 맑음.
여러 동네의 사람들이 밤을 무릅쓰고 찾아와서 본진(本鎭)에 함께 들어가 본관(本官, 본관아의 수령)에게 호소할 것을 나에게 요청을 했다. 홍주(洪州)에 가서 백성을 안도시킬 뜻을 본관에게 거듭 말했다.
11월 14일 병술 [十四日 丙戌] 맑음.
본 읍의 수령이 홍주(洪州)에 가다가 지나는 길에 찾아왔다. 사람들이 밤새 보러왔다.
11월 15일 정해 [十五日 丁亥] 맑음.
각 동네의 사람들이 연락을 하여 보러왔다. 금현(琴峴) · 기은곶(其隱串) · 분지동(分池洞) · 이동(梨洞) · 오지(烏池)에 갔다가 족제(族弟) 집에서 묵었다.
11월 16일 무자 [十六日 戊子] 맑음.
오지(烏池)에서 돌아왔다. 밤에 기은곶(其隱串)에 가서 면회장(面會長)을 보았다. 한밤중에 소헌(韶軒)과 생원(生員) 오익선(吳翊善) 및 사람들이 찾아와서 새벽녘에 함께 구진(舊鎭)의 시장에 갔는데 각 마을에서 모였다. 또한 면천(沔川)의 농보(農堡) 20여 명이 도인(道人)을 잡아서 몰려왔다. 마침 얼굴을 아는 사람을 만나 사리(事理)로 충분히 말을 하여 무사히 돌려보냈다.
11월 17일 기축 [十七日 己丑] 맑음.
사람들이 계속 오니 실제로 괴롭다.
11월 18일 경인 [十八日 庚寅] 바람이 세차게 불고 갑자기 추워졌다.
사람들이 계속 와서 묵는 사람이 많아졌다.
11월 19일 신묘 [十九日 辛卯] 맑고 추웠다.
날마다 손님들을 보았다. 어떤 일을 막론하고 모두 물으러 와서 응답을 하니 실제로 괴로웠다. 이 근처에도 도인(道人) 중에 죄가 많은 자는 잡아서 홍주(洪州)로 보냈다. 족제(族弟)인 영제(寧濟)와 배(裵)씨가 찾아왔다.
11월 20일 임진 [二十日 壬辰] 흐림.
손님을 맞는 괴로움이 계속 이어졌다. 본 읍의 수령이 홍주(洪州)에서 돌아오는 길에 찾아와서 대략 세상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은 일본인이 성(城)에 가득하고, 황해도에는 민요(民擾, 민란)가 다시 일어나 도백(道伯, 감사)이 잡혀가서 무리들과 함께 죽었다고 하였다. 평안도는 청국 군대가 패배하여 도주할 때 저지른 폐단이 비할 데가 없어 읍들이 거의 비게 되었고, 강원도에도 동학(東學)이 일어났으며, 경상도에도 동도(東道)의 난리가 일어났다고 하였다. 전라도는 동학의 괴수(魁首) 전녹두(田彔斗, 이름은 鳳俊이다)가 다시 소요를 일으켜서 한산(韓山)과 남포(藍浦) 등지에 이르렀는데, 홍주목사 겸 초토사 (洪州牧使兼招討使)가 군사를 내어 막았고, 금영(錦營, 충청감사)에서도 출병을 했다고 하였다. 난당(亂黨)이 없는 곳이 없으니 허다한 난류(亂類, 동학교도)를 어떻게 맞아 귀화시키겠는가? 매우 근심스럽다. 살릴 방도를 모르겠다. 밤에 눈이 많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11월 21일 계사 [二十一日 癸巳] 눈이 오고 매우 추웠다.
족제(族弟) 영제(寧濟)와 배(裴)씨가 찾아왔다.
11월 22일 갑오 [二十二日 甲午] 맑고 추웠다.
11월 23일 을미 [二十三日 乙未] 맑고 추웠다.
11월 24일 병신 [二十四日 丙申] 맑음.
아내 송(宋)씨의 기일(忌日, 제삿날)이기 때문에 재계(齋戒)를 하였다. 우리 고향에도 유회소(儒會所)를 설치하였으나 도회장(都會長)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 각 동네마다 14개 마을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리 집에 와서 내게 도회장을 맡아줄 것을 간청하였다. 사람들의 기대가 귀결되어 회피하기가 어려워서 억지로 따르니 마을마다 기뻐하며 흩어졌다.
11월 25일 정유 [二十五日 丁酉] 밤에 눈이 조금 내렸다.
유회소(儒會所)는 목치(木峙)에 자리를 마련하고 어쩔 수 없이 나가보았다. 비록 사람들의 기대가 귀결되어 허락하였으나 이런 어지러운 세상을 맞아 사람들의 두목(頭目)이 되니 매우 두려웠다. 영유(永柔) 척조(戚祖) 이수은(李秀殷) 씨가 이 달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부음(訃音)이 도착하니 슬픈 마음이 들었다. 목치에 갔다가 도중에 홍주(洪州) 원봉(圓奉)의 유회군(儒會軍) 30명을 만났는데, 화포(火炮)를 가지고 왔다. 경내 전체를 숙청하고 물러나서 떠나가는 것이었다. 저물어서 목치에 도착하여 묵었다.
11월 26일 무술 [二十六日 戊戌]
유소(儒所, 유회소)를 함께 만들고 기숙하였는데, 이 참봉(李參奉), 손 석사(孫碩士), 탑동(塔洞)의 김 생원(金生員), 성 석사(成碩士, 자는 順五이다)와 함께 머물렀다. 각 마을의 회장(會長)들이 서로 하루걸러 찾아와서 하루 종일 일이 많았다. 정말 난처한 것은 좌우로 응대하여 말을 해야 하니 실제로 괴로웠다.
11월 27일 기해 [二十七日 己亥] 다시 어제처럼 맑았다.
추곡(秋谷)의 종숙(從叔)이 본가에서 들어왔다.
11월 28일 경자 [二十八日 庚子] 흐림.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을 위주로 하였다. 정신이 피로하고 괴로워서 매우 힘들었다. 20일을 밖에 나가 있어 문안(問安)인사를 빠뜨린 것이 걱정되어 어둠을 타서 돌아왔다.
11월 29일 신축 [二十九日 辛丑] 맑음.
본 읍의 수령이 찾아왔다. 하루 종일 손님을 대하니 틈이 없었다. 밤에 눈이 왔다.
11월 30일 임인 [三十日 壬寅] 맑다가 밤에 눈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하루 종일 사람이 와서 좌우로 응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