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사령(使令)편에 아들에게 답장을 한다 [答阿子 二月十九日 使令便]
청주(淸州)에 갔다가 별탈 없이 잘 돌아왔다니 매우 기쁘다. 매우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고 위로됨이 끝이 없었다. 밤에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이 피로와 괴로움은 없는지, 관아의 권속(眷屬)들도 모두 편안한지 매우 걱정스럽다. 이 아비는 그럭저럭 지내고 있고, 온 집안이 모두 편안하여 다행스럽다. 지금 추행(楸行, 성묘)을 가려는데, 이처럼 비가 올 형세이고, 심지어 효림(孝林) 산소의 사초(莎草)에 크게 방해가 되어 매우 걱정스럽다. 무고해 알린 놈을 지금에야 알았다면, 그 성명(姓名)이 무엇인가? 이와 같은 놈은 용서해서는 안된다. 크게 징계하여 1를 들어 100을 징계하도록 해야 한다. 책방(冊房) 이생원은 자질이 단아하고 깨끗하여 여러 읍을 거쳤다고 하니 모든 일에 반드시 숙련되었을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사서 보관하고 있는 집의 재목을 350냥에 윤검서(尹檢書)에게 팔았고, 200냥을 먼저 받았다. 제천(堤川)의 접대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는가? 300리 밖의 참(站)에 나가는 것은 옛날에도 없고 지금에도 없는 관례이어서 실로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