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사령(使令)이 돌아가는 편에 아들에게 답장을 한다 [答阿子 二月二十一日 使令回去便]
뜻밖에 어젯밤에 관예(官隷, 관아의 하인)가 와서 편지를 주어 먼저 놀라고 나중에 위로가 되었다. 밤사이에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이 더욱 건승(健勝)하고, 권속(眷屬)들도 여전한지 매우 걱정스럽다. 이권형(李權衡) 3부자(父子)의 죄는 머리카락을 뽑아 속죄해도 오히려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고, 영읍(營邑)에 회자(膾炙)하여 덮어두어서는 안된다. 영저리(營邸吏)의 고목(告目)을 본 뒤에 바로 순영문(巡營門)에 올려 순상(巡相)에게 상세히 말하여 크게 징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감영에 보고하면 수모를 받는다는 말은 권형(權衡, 이권형)을 도우려는 계획인 것 같다. 감영에 보고하는 조치에 무슨 모욕을 받겠는가? 권형의 패거리가 아닌 자가 없다. 효림(孝林) 산소의 사초(莎草, 무덤에 떼를 입혀 잘 다듬는 일)는 비가 그치고 다행히 개여서 일을 잘 끝냈다. 묘표를 묻는 일은 관(官)에서 한다면, 저 읍 백성의 습속이 흉악하여 뒷말이 나올 것이니 주아(朱雅, 아(雅)는 존칭)를 이곳에 보내 다시 그 묘혈(墓穴)을 물어보고 사람을 보내 묘표(墓表)를 묻는 것이 좋을 듯하다. 상세히 헤아리는 것이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