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월준이 가는 편으로 보은에 보낸다 [寄報恩 四月二十四日 月俊送便]
일전에 인업(仁業)이 고하지 않고 가서 편지를 받지 못해 슬픔이 절실하여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어제 오후에 편지가 와서 열어보고 매우 위로가 되고 기뻤다. 밤사이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에 심한 괴로움은 없고, 둘째 며느리도 편안한지 매우 걱정스럽다. 이 아비와 네 어머니, 그리고 네 댁은 모두 편안하니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 그 사이에 진휼을 실행하여 쌀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눠 주려는가? 어(魚, 어윤중)대감 양호어사(御使)는 그 사이에 정말로 복명(復命)했는가? 남쪽에서 오는 소식을 들어보니, 동도(東徒) 몇 천명이 순창(淳昌)의 경계에 집결하여 그 형세를 헤아리기 어려웠는데, 저 수령이 크게 대오(隊伍)를 만들고 군호(軍號)를 내어 나가 싸우게 하여 죽음을 당한 작대(作隊)가 300명이고 동학도는 200명이라고 한다. 이 소식은 윤선산(尹善山)이 새로 얻은 첩(妾)의 집에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