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짐꾼이 돌아가는 편으로 보은에 답장을 보낸다 [答報恩 六月初十日 卜軍回去便]
그리움이 그치지 않았는데, 보내온 편지를 대하니 마치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것 같다. 지겨운 장마비가 잠깐 개인 때에 부모를 모시며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에 별다른 큰 허물은 없고, 네 어머니와 아내 및 둘째 며느리도 모두 편안하다는 것을 아니 기쁨을 견디기가 어렵다. 이 아비는 6월 1일 집에 돌아온 뒤 서증(暑症, 더위로 인한 증세)으로 4~5일 동안 매우 아팠는데, 약을 많이 복용하여 지금은 비록 덜해졌으나 숙식(宿食)은 아직도 좋지 않다. 이런 때에 의례적인 증상이니 어찌 하겠는가? 집안에 변고가 없으나 조카며느리의 유종(乳腫)이 끝내 회복되지 않아 매우 걱정스럽다. 네 어머니가 돌아올 날짜가 13일로 정해졌다는데, 비온 뒤에 무더위 때문에 낮에 걷기가 어려우니 새벽과 저녁 중에 모시고 길을 떠나라.
이번에 효림(孝林)·의동(義洞)·목동(木洞)·장록동(獐鹿洞)·성현(星峴) 등지에 장마비가 온 것은 개벽(開闢)했다고 할 만하다. 사람이 많이 다쳤고, 전답(田畓)이 망가져서 하천이 되었다는 광경을 듣고 매우 참담하였다. 저 읍은 청산(靑山)에 비해 대단하지가 않다.
양대섭(梁大燮)은 본래 학자로 이름을 얻었으나 지금 이방(吏房)에 차임되었다고 한다. 모든 일을 하는 것에 혹시 어둡지는 않은가? 이운경(李雲卿)에게 가라고 권고하니 내일 새벽에 간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