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장성(長城) 친척 편에 부쳐 사종제(四從弟) 참판 용원(容元)을 위문한다 [慰四從弟參判容元 八月二十九日 付長城戚人便]
예를 생략한다. 1,000리 땅에 있어 소식이 막히니 근심이 대단하여 붓으로 더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계씨(季氏, 막내 동생)의 상사(喪事)와 막내며느리의 상(喪)은 갈수록 놀라워서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는가? 할반(割胖, 형제의 죽음)의 아픔과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찌 견디겠는가? 상사가 계속 이어졌는데, 편지로 대신하고 위문도 이처럼 늦어져서 부끄러움이 그치지 않도다. 가을 하늘이 높은 때에 상중의 형편은 장기(瘴氣)와 습한 섬에서 별다른 손상은 없고, 아들과 조카는 잘 지내며, 고향집의 소식은 종종 듣는지 모두 그립다.
나는 70살의 노쇠한 처지에 편안한 날은 늘 적어 실로 고해(苦海)의 지루함을 느끼고 있다. 집안에 변고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집아이는 매우 피폐하고 결딴난 처지에 괴로운 일이 많은데다가 올 봄에 동소(東騷)가 더해졌다. 민심은 겨우 진정되었으나 공납(公納)의 적체가 산처럼 많아 전혀 마련할 방도가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여 조금도 틈이 없다. 근심스럽고 답답함을 어찌 하겠는가? 돌아오라는 뜻으로 종종 말할 뿐이다. 근래에 영영(嶺營)의 소식을 들었는데, 모든 형편이 두루 편안하고 형칠(亨七)은 별탈없이 잘 지낸다고 하니 매우 기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