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칠복(七福)과 고목사(告目使)편으로 예안(禮安)에 보낸다 [寄禮安 七月二十日 七福告目使便]
14일에 칠복(七福)이 와서 편지를 받아 보니 기쁨과 위로됨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칠복을 돌려보낼 때에 예안(禮安)의 고목사(告目使)가 와서 고목(告目)을 펴서 보니, 이 달 5일의 도정(都政)에서 이직(移職)이 된 것을 축하한다. 가뭄과 더위가 극심한 때에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에 별다른 괴로움은 없고, 권속(眷屬)들도 두루 잘 지내는지 더욱 걱정스러워서 종일 그치지 않는다. 이직소식은 언제 들었고, 감부(勘簿)는 어떻게 마쳤으며, 치행(治行, 짐을 꾸려 보내는 것)의 모든 일은 많이 군색했을 듯하여 더욱 근심이 그치지 않는다. 이 아비는 여전하고, 대소(大小)의 모든 식솔들도 편안하여 다행스럽다. 그러나 강아(康阿, 종손녀)가 단지 근래에 복학(腹瘧)으로 건강하지 못하나 증세는 대단하지 않다.
예안읍이 비록 태백산 아래에 치우쳐있어 매우 한가하고 외지더라도 난리를 피하기에 충분하여 아주 다행스럽다. 그러나 관황(官況)의 많고 적은 것을 어찌 상관하겠는가? 수석(壽石)형님이 6일에 올라가고, 밀부(密符, 병부(兵符)이다)를 형칠(亨七)이 대신 바치려고 올라갔는데, 혹시 견책(譴責)과 추고(推考)의 단서는 없는가? 월봉(月峰)의 변룡(辨龍)이 부족증(不足症)으로 5일에 요절(夭折)해서 그의 청상과부와 어린애의 신세가 몹시 가련하다. 가뭄이 너무 심하여 논과 밭의 곡식이 전부 타들어가서 하나도 추수할 가망이 없어 매우 두려운데다가 동도(東徒)가 다시 일어나서 마을이 매우 소란스럽다. 통탄스러움을 어찌 하겠는가? 전정(錢政)이 완전히 모자라고 물가는 10배나 많이 올라서 만청(蔓菁, 순무)과 남과(南瓜, 호박) 등은 매우 귀하다. 비록 난리중이라 하더라도 조석(朝夕)을 이어가기가 매우 어려워서 실로 견디기가 어렵다.
진(秦)노인이 잘 돌아왔는데, 그 속을 자세히 보고 들으면 믿게 될 것이다. 헤아리는 것이 어떠한가? 참판 윤창섭(尹昌燮)이 아내를 데리고 9일에 그의 서제(庶弟)집에 내려와서 서울소식을 제법 들었다. 청(淸)나라를 배신하고 왜(倭)에 붙었다는데 모든 국사(國事)를 일본인 오오토리 게이스케(大鳥奎介, 奎는 圭의 오기)가 제멋대로 처리하고, 갑신정변(甲申政變)때의 역적인 박영효(朴永孝, 永은 泳의 오기)가 머리를 기른 뒤에 영의정에 제수하도록 운장(雲丈, 흥선대원군)이 서표(書標)를 주었다고 한다. 이것은 심장이 서늘하고 뼈가 떨리는 것이 아닌가? 개화당(開化黨) 70여명이 득의양양하여 신기선(申基善)과 이도재(李道宰)를 한꺼번에 풀어주었고, 김윤식(金允植)을 강화유수로 등용하였으며, 그의 아들 유증(裕曾)은 세마(洗馬)로 처음 입사(入仕)하였고, 사촌 만식(晩植)은 서백(西伯, 평양감사)을 제수받았다. 어윤중(魚允中)은 혜당(惠堂, 선혜당상(宣惠堂上)의 준말)을 제수받았고, 망월리(望月里)의 육종윤(陸鍾胤)은 외무참의(外務參議)를 제수받았는데, 이들이 모두 개화당의 인물이었고, 갑신정변의 역적인 김옥균(金玉均)은 신원(伸寃)되었다고 하니 통분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조선의 360주(州)를 100주로 마련하여 읍마다 3명의 수령에게 사송(詞訟)·공납수쇄(貢納收刷, 세금의 납부)·군무(軍務)를 배정하고, 봉록(俸祿)은 한양에서 나누어 준다고 한다. 석천(石泉, 미상)대감이 완백(完伯, 전라감사)에 등용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말이 아닌가? 민영준(閔泳駿)은 거처를 알지 못하고, 무당인 진령군(振靈君)은 뒤를 밟아 체포하여 거열(車裂, 형벌)을 했다고 한다. 세도가 김가진(金嘉鎭)과 조희연(趙羲淵)…6조(六曹)는 나누어 9부(九部)로 만들어 맡은 바를 배정하였다고 한다. 우리 태조(太祖) 임금의 위대한 유적(遺蹟)이 하루아침에 이런 지경에 이르니 통곡한다. 청나라도 이홍장(李鴻章)이 권력을 잡고 간사한 무리가 조정에 가득하여 황제의 총명을 가려서 광서제(光緖帝)의 정신이 혼미하였다. 오오토리 게이스케(大鳥奎介, 奎는 圭의 오기)가 빠져나올 때에 은전 10,000원(元)을 이홍장에 뇌물을 바쳤는데, 상국(上國, 청나라)이 그를 70먹은 늙은 도적이라고 불렀다 한다.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마찬가지이고, 원사(袁使, 원세개)가 가서 기약을 어기고 오지 않으니 그 속을 알지 못하겠다고 한다. 들은 것을 일일이 적어서 보낼 수가 없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