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천(金伊川) 준근(寯根)에게 답장을 한다 [答金伊川 寯根]
궁벽한 산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온갖 근심이 모두 없어지고 형을 생각하는 마음만이 오고 갈 때에 형이 주신 편지를 받아보고 난리 중에 무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과 신(神)이 교대로 도운 것이 아닙니까? 여러 번 편지를 읽으니 마음이 기쁘고 상쾌하며, 황홀한 것이 마치 구름이 걷치고 하늘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 서늘한 기운이 점차 생겨나고, 매미 소리가 더욱 맑은 때에 조용히 지내시는 형의 형편이 계속 좋으시고, 아드님은 부모를 모시며 잘 지내기를 멀리서 바라는 마음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1년상 중인 저는 이 마을에 칩거하여 거듭 이사를 하였습니다. 지난 해에 예전에 없던 큰 난리를 겪은데다가 올해 3월 29일에 갑자기 아내의 죽음을 맞아 늘그막의 상심을 실로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식솔들에게 변고가 없어 다행스럽습니다. 말씀하신 공포(公逋, 포흠(逋欠)이다)의 일은, 지난 날 우리 형의 정치(政治)를 생각하면 이 읍에 부임한 뒤에 오로지 청렴으로 다스려서 조금도 혼탁이 없었는데, 어찌 지금 이런 포흠의 얘기가 있을 줄을 예상했겠습니까? 지금 인심을 생각하면 변괴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속세를 벗어나서 한명의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겠습니까? 이것이 실로 소원하는 것이나 하기 어려운 한가지 일이기도 합니다. 자세한 것은 그만두고, 모두 끝에 있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삼가 답장을 올립니다.
이 마을이 동비(東匪)의 소굴이 되었기 때문에 지난해에 곤욕을 당한 것이 다른 읍보다 더욱 심하였습니다. 아내가 이 동비의 난리를 괴로워하여 집 아이를 따라 함께 무안(務安)에 갔습니다. 올 봄에 이르러 오래된 병이 위중해져서 갑자기 죽었으나 80가까이 해로(偕老)한 처지에서 직접 영결(永訣)하지 못하고 갑자기 이런 지경이 되니 원통하고 애달픈 이 마음은 갈수록 더욱 새롭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한마디로 늙어서 홀아비 심정은 실로 젊었을 때보다 갑절이나 됩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누구에게 말하겠습니까? 형과 같은 사람이 곁에 있어 종일 이런 속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옛날사람은 형뿐이기 때문에 이에 여러번 말하는 것입니다. 석능(石能)도 계속 만나고 있습니까? 바람을 향해 쏠려가니 늘 그리움이 간절합니다. 아계(阿季, 상대방의 막내동생)와 식솔들도 변고가 없고, 늘그막에 형제들이 더욱 편안한 것을 느낍니다. 이미 그 사이에 손자를 보는 즐거움을 맛보았으나 지난 가을에 죽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막힌 운수인데, 한탄스러움을 어찌 하겠습니까? 어제 보내주신 백당(栢餹, 잣으로 만든 엿인 듯)은 지금까지 고맙고, 바로 그 때에 답장을 써서 부쳤습니다. 혹시 중도에서 없어졌는지 의혹이 더욱 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