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질인 승지 조중엽(趙重燁)에게 답장을 한다 [答趙甥承旨重燁]
해가 바뀌고 보름달이 되니 그리움이 더욱 지극하였는데, 인편이 와서 편지를 받으니 위로됨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그 사이에 이미 여러 날이 지났고, 봄추위가 아직도 매서운 때에 부모를 모시며 지내는 영감의 형편이 더욱 편안하고, 어머님의 감기는 쾌차하였으며, 영감의 계씨(季氏)는 부모를 모시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네 집의 모녀(母女)도 잘 지내는지 매우 걱정스럽다. 나는 어느덧 80을 바라보니 노쇠함과 질병이 더욱 침범하고 온갖 감정이 교대로 모여 스스로 외로운 그림자를 가련해한다. 다만 집안에 별고가 없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서울 소식은 진짜와 가짜가 절반씩 섞여 있어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의병이 사방에서 일어나 여러 읍들의 수령을 많이 죽였다고 하니 두렵다.
영감이 한양에 가는 것은 그 동정(動靖)을 살펴보고 완전히 평정된 뒤에 기약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내의 연사(練祀, 연제사)는 국휼(國恤, 국상)의 졸곡(卒哭)전에는 감히 생각할 수가 없어 다음 달 정일(丁日)과 해일(亥日) 사이에 지낼 계획이다. 나의 이제(姨弟, 이종 동생)인 서상기(徐相耆)가 그 때에 청풍(淸風)수령으로 있었는데, 삭발(削髮, 단발)하여서 의병장이 그 죄를 성토하여 이미 해를 입었고, 그 시체는 아직도 염습(殮襲)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비참하다. 영감의 재종씨(再從氏)인 오위장(五衛將)이 그 사이에 이 읍의 김씨집에서 속현(續絃, 후처(後妻)를 맞이하는 것)을 하여 16일에 우례(于禮)를 치렀다. 신부의 범절(凡節)이 기대한 것에 부합된다고 하니 다행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