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善山) 김봉수(金鳳洙)에게 편지를 한다 [書金善山鳳洙]
동서(東西)의 외진 곳에 있어 소식이 끊겨서 늘 그리워하여 실로 이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뜻밖에 상사(上舍)인 영감의 막내아들이 찾아와서 우리 형이 지내시는 형편이 편안하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기쁨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그 사이에 여러 날이 지나 해가 점점 저물어 가는데, 형의 안부가 여전히 편안하고, 대소(大小)의 모든 일이 두루 태평하며 손자 김린(金獜)은 부모를 모시며 공부를 열심히 하는지 모두 그립습니다. 경제(庚弟, 동년생)인 저는 여전히 노쇠합니다. 집안에 별고가 없고, 늦게 얻은 손자 1명을 안고 노는 재미로 근심을 잊어버립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총명함은 비범한 조짐을 보여서 비록 다행스럽더라도 나이가 80살에 가까운데 어찌 손자의 성취를 감히 보겠습니까? 하하.
동요(東擾)의 전에 없는 광분(狂氛)을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제가 겪은 것은 더욱 참혹합니다. 이곳저곳으로 피신하였다가 아내는 작년 3월 29일에 갑자기 무안(務安)의 객관(客館)에서 죽었습니다. 60년을 해로한 뒤에 직접 영결(永訣)하지 못하고 500리의 먼 길을 간신히 운구(運柩)하여 선친의 옆 산기슭에 묻었습니다. 비통한 마음과 외로움에 처한 상처는 갈수록 심합니다. 그러나 나머지의 모욕을 당하고 빼앗긴 것을 어찌 모두 들어 말하겠습니까? 한번 웃는 것에 부칠 뿐입니다. 원구(元九)의 서제(庶弟) 의득(義得)이 지난 달 29일에 학질 때문에 죽었는데, 매우 가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