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居昌)수령 조중엽(趙重燁)에게 답장을 한다 [答居昌伯趙重燁]
눈이 쌓인 궁벽한 마을에서 다시 세모(歲暮)를 맞으니 지난 날의 감회를 실로 억제하기가 어렵다. 인편이 와서 보내준 편지를 받고 여러 번을 읽으니 고마움과 위로됨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섣달 추위에 정무(政務)를 살피는 형편이 늘 편안하다는 것을 알았다. 연말의 모든 일이 많이 괴롭다고 하니 그리움과 걱정이 다시 절실하다. 나는 오래된 병이 추위를 맞아 재발하여 차가운 등불에 홀로 누워 잠을 자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그 형세를 어찌 하겠는가? 다만 어린 손자가 잘 크고, 집안에 별고가 없어 다행스러울 뿐이다. 보내준 좋은 인삼(人蔘)은 병든 객(客)에게 약이 되어 칭송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보내는 것은 여러 곳들의 세의(歲儀, 연말 선물)을 새로 정하고 남은 것을 어떻게 후하게 줄 수 있는가? 아무쪼록 규정을 세워 빚을 지는 입장에 이르지 않는 것이 어떠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