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六月二十七日]
이번에 도착한 영접관 이중하가 베껴 옮긴 내용에, “중국 진영의 형편을 연이어 급히 임금께 보고하였으며, 아산읍에 머물고 있는 각 진영들은 일본군이 점차 핍박하자 차례로 성환 등지로 군대를 이동하였으며, 6월 26일 축시(丑時, 오전 1~3시) 쯤에 대수(大帥) 섭지초 진영도 또한 천안으로 옮겨 주둔하였고, 신(臣) 또한 차비관 박종선(朴宗銑)·이필균(李弼均) 등을 거느리고 군대를 따라 함께 갔다는 연유를 임금께 급히 보고한 후 베껴 옮깁니다”라고 하였으므로, 호행(護行)하는 절도와 접대하는 방도를 각별히 타일렀습니다. 그러한 연유를 임금께 급히 보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