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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1일 辛亥. 맑고 매우 더웠다. 오랜 가뭄에 비를 바라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차례를 행하였다. 유규항(兪圭恒)이 왔다. 타던 거문고를 본래 주인이 찾아가서 월봉(月峯)으로 사람을 보내 거문고를 빌려왔다. 현경전(玄景田)이 왔다. 학현(學玄)이 해서(海西)로 갔다.

13일 癸亥. 더위가 어제보다 심하다.

승선(昇仙) 어도사(魚都事)가 심부름꾼을 보내 선무사(宣撫使) 어대감[魚台, 允中]의 답장과 장물을 조사한 계본[啓本, 임금에 올리는 글] 초본을 보냈다. 전백의 장물은 120만 냥으로 〈이것도〉 10의 2~3에 지나지 않아 그 나머지는 다 조사할 수 없다고 한다. 계문을 작성하는데 십 여일이 걸렸으며, 조정에서는 일본에 배상하는 것이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아 아직도 회하[回下, 회답]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14일 甲子. 혹독한 더위가 어제와 같았다.

유치백(兪致百)이 목금[木禽, 과일] 백여 개를 보냈다. 천구(千駒)와 세경(世卿)・은경(殷卿) 형제와 어망을 가지고 성전(聖田)으로 놀러갔다. 현경소(玄景韶)가 서산(瑞山)에서 왔다고 한다. 지난 달 해안에 해일이 3~4길[丈]이나 일어 망친 전답과 염포[鹽包, 염전]가 많고, 또 메뚜기의 피해로 자못 벼가 상하여 곳곳에 충해(蟲害)가 있다고 한다.

16일 丙寅. 혹독한 더위가 어제와 같았다.

더위의 고통스러움을 맞설 수가 없어서 아침을 먹고 영탑사(靈塔寺)로 올라가 법당(法堂)에 앉아 더위를 피하였다. 나그네 둘이 한 사람은 맹인 악사로 풍소를 불고, 한 사람은 거문고를 뜯고 서로 화답하면서 불고 튕기는 것이 자못 듣기 좋았다. 세경(世卿), 은경(殷卿), 순소(舜韶), 성여(誠汝)가 왔다. 도은(陶隱)이 와서 묵었다. 퉁소를 불고 거문고를 연주하던 두 나그네도 와서 묵었다.

17일 丁卯. 혹독한 더위가 어제와 같았다.

새벽에 며느리의 제사를 지냈다. 두 율객[律客, 음악인]이 갔다. 도은(陶隱)과 영탑사(靈塔寺)에 올랐다. 백거(伯渠)가 와서 묵었다.

18일 戊辰. 혹독한 더위가 어제와 같았다.

백거(伯渠)가 갔다. 양근(楊根)의 늙은 향리 이풍연(李豐淵)이 와서 묵었다. 박종헌(朴琮憲)이 왔다.

19일 己巳. 혹독한 더위가 어제와 같았다.

이풍연(李豐淵)이 갔다. 박종헌(朴琮憲)이 왔다. 본관(本官) 홍종연(洪鍾奫)이 서흥(瑞興)으로 이배(移拜)된다고 한다. 도은(陶隱)과 함께 백거(伯渠)를 방문하였다. 도은이 갔다. 당진(唐津) 강생(姜生)이 왔다.

20일 庚午. 이른 아침에 가는 비가 뿌렸다. 혹독한 더위는 어제와 같았다. 밤안개가 아침까지 이르렀다.

세경(世卿)이 왔다. 김여수(金汝壽)가 왔다. 면천(沔川)의 신관(新官)은 태천(泰川)의 이시일(李是鎰)이 옮겨온다고 한다.

23일 癸酉. 종일 가는 비가 뿌렸다. 밤비가 잠시도 쉬지 않고 다음날 아침까지 내렸다.

장내(場內)의 교리(校理) 한흥교(韓興敎)가 집에 오는 편에 안동(安洞)・재동(齋洞)의 편지를 전했는데 이달 14일에 보낸 것이었다. 홍랑[洪郞, 思弼]이 과거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또 옥당(玉堂)에 비점(批點)을 받았으며, 홍학사(洪學士)를 치제(致祭)하라는 명이 있었다고 한다. 금백[錦伯, 충청감사] 조병호(趙秉鎬)의 편지가 읍에서 왔다.

24일 甲戌. 어젯밤부터 큰 비가 내려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빠른 우렛소리가 한번 나고 비가 그쳤다. 밤에 또 퍼붓듯이 크게 비가 내렸다.

영탑(靈塔)에 올라 들 빛을 보니 먼 들에는 물이 넘쳐나 마치 바다의 조수와 같았고 모든 계곡이 우렛소리를 내었다.

30일 庚辰. 초복의 혹한 더위였다.

인도숙(印道叔), 유규항(兪奎恒), 박의형(朴義亨)이 왔다. 의형은 새로 이방(吏房)에 차임되었다. 평기(平基) 이생(李甥)의 편지가 감영의 우편(郵便)을 통해 왔다. 평택(平澤)의 홍랑이 사람을 보내 편지를 보냈는데 23일 재동(齋洞)에서 보낸 편지였다. 홍랑이 26일 집에 도착하여, 28일 치제(致祭)를 받고 다음달 5일 이곳에 온다고 한다. 즉시 답장을 써서 온 종에게 부쳤다. 이군선(李君先), 양찬환(梁贊煥)이 왔다. 본관(本官)에서 체직된 홍종연(洪鍾奫)이 와서 이별하고 갔다.

주석
홍학사(洪學士) 1636년 병자호란 때 철저히 항전을 주장하다가 청나라로 끌려간 흥익한(洪翼漢). 충신의 상징으로 받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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