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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1일 己卯. 연일 맑고 따스하였다. 오늘 아침은 흐리고 따스하여 마치 봄과 같았다.

차례(茶禮)를 행하였다. 집 아이가 돌아왔다. 최성여(崔誠汝)가 왔다. 조운포(趙雲圃)가 왔다.

9일 丁亥. 반나절은 흐리고 반나절은 맑다가 잠시 눈이 왔다.

청산(靑山) 박생원[산림(山林) 성양씨(性陽氏)의 재종질(再從侄)이다.]이 왔다. 돌석(乭石)이 갔다. 김용(金龍)이 대죽동(大竹洞) 소임(所任)을 데리고 와서 장 항아리를 두고 갔다. 돌석(乭石)이 갔다.

10일 戊子. 맑았다.

희경(羲卿)이 서울에서 돌아오는 편에 초 5일에 쓴 육・나 양군의 편지를 가져왔다. 읍내 사람 김필주(金畢周)가 왔다. 고노(雇奴) 윤대성(尹大成)이 죽죽동(竹竹洞)으로 갔다. 중평(仲平)이 원평(元坪)에서 왔는데, 그의 아내의 병이 조금 차도가 있다고 하였다.

12일 庚寅. 밤비 소리가 났는데, 새벽까지 이어졌다.

인탁여(印卓如), 현경전(玄景田)이 왔다. 단하(丹霞) 이규민(李敏圭)이 아버지 상을 당하였다. 그 집에 홍매화(紅梅) 한 그루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석교(石橋)로 보내 가져오게 하였다.

14일 壬辰. 맑고 달빛이 아름다웠다. 동지절(冬至節).

차례(茶禮)를 행하였다. 김의경(金義卿)이 왔는데, 서울에서 돌아온 것이다.

23일 辛丑. 맑고 추웠다.

주치(舟峙)에서 오는 편으로 안동 및 누동의 편지를 받았다. “황주(黃州) 중화(中和)에 민요(民擾)가 발생하였는데, 황목(黃牧), 황주목사은 바로 지난번 면천(沔川) 군수였던 송재화(宋在華)로 우선 파직되었다. 강계(江界),회령(會寧),종성(鍾城) 등의 민요(民擾)로 인해 고을 수령 김영적(金永迪), 홍시형(洪時衡) 등 3인에게 종루(鍾樓),서울종각에서 장형(杖刑)을 집행하고, 이후 모두 섬으로 귀양보냈다. 구수(龜壽)의 관례(冠禮)를 12월에 행한다.”고 하였다.

주석
황주(黃州) 중화(中和)에 민요(民擾) 1893년 계사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각지에서 민요가 일어났다. 북쪽의 종성과 성천에 이어 황주 중화 청풍 개성 재령 등지에서 백성들이 관속의 집을 파괴하거나 폐막을 시정해달라고 관정에 돌입했다.(고종실록 계사년 11월, 12월조) 이를 계기로 민요가 전국에 파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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