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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1일 戊申.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차례(茶禮)를 행하였다. 천우(千又)가 갔다. 김여수(金汝壽)와 남(南), 이(李), 박(朴)의 목수들이 갔다. 순소(舜韶)가 왔다. 김경렬(金景烈)이 왔다. 오늘은 곧 농가 고용 가절(農家雇傭佳節)이어서, 마을마다 농기(農旗)를 내걸고 징과 북을 두드리며 즐겼다. 밤이 되자 덕산(德山)에 살 만한 계집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김윤경(金倫卿)이 안성현(安成賢) 등을 데리고 덕산으로 가서 사왔다. 계집종의 이름은 순녀(順女)이고 가격은 600냥이었다.

3일 庚戌. 맑고 바람이 불고 추웠다.

새로 산 계집종이 도망갔다.

6일 癸丑. 바람이 불고 추었다.

최덕호(崔德浩)가 왔다. 당진(唐津) 김생 명기(金生命基)・한기(漢基)가 왔다. 새 집의 안채 지붕을 이었다. 구례(求禮) 수령을 지낸 구대식(具大植)이 왔다.

4일. 서울 소식이 왔다. 또 원평(元坪) 김중평(金仲平)이 돌아오는 편에 지난달 24일자의 서울 편지를 받아왔다. 육성대(陸聖臺)와 좌랑(佐郞)의 편지만 있고, 재동에서 내리시는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10일 丁巳.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김여수(金汝壽)가 와서 묵었다. 그 외 목수 3인이 내일 와서 행랑 재목(材木)을 다듬을 예정이다.

11일 戊午. 맑고 따스하였다.

서혜춘(徐惠春)이 거문고를 가지고 내방하였다. 율객(律客) 문형숙(文亨叔), 이군방(李君芳)도 따라 왔다. 최성여(崔誠汝)가 왔다.

13일 庚申. 맑고 바람이 불어 추웠다.

덕산(德山) 윤성빈(尹聖賓)이 사람을 보내 새집의 마루 목재에 관한 일을 돕도록 하였다.

14일 辛酉. 맑고 바람이 불어 매우 추웠다. 춘분절(春分節).

현순소(玄舜韶)가 와서 묵었다. 김돌생(金乭生)이 왔다. 새집 행랑에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렸다.

15일 壬戌. 맑고 따스하였다.

분향(焚香)을 행하였다. 식사를 한 후 의두암(依斗岩)을 넘어, 김윤경(金倫卿)과 함께 황백거(黃伯渠)를 방문하였다. 백거(伯渠), 윤경(倫卿)과 함께 송평(松坪)에 가서 황혜중(黃惠仲)의 병을 위문하고, 김지사(金知事) 노인을 방문하였다. 여기에서 백거(伯渠), 성여(誠汝), 은경(殷卿)과 함께 죽동(竹洞)으로 가서 인세경(印世卿)을 방문하고, 인도숙(印道叔)의 병을 위문하였다. 저녁 식사 후 세경(世卿)이 가마와 가마꾼을 준비하고 가마를 타고 돌아가라고 강권하여, 가마를 타고 달빛을 받으며 돌아왔다. 은경(殷卿)이 결성(結成)에서 벽오동 한 그루를 얻어 와서 선물하였다. 돌아와 뜰에 심었다. 김일관(金日觀)이 왔다. 목수 등이 갔다. 19일에 다시 온다고 약속하였다.

19일 丙寅. 맑고 바람이 불었다.

새집 행랑에 흙을 덮고 지붕을 이었다. 이군선(李君先)이 왔다. 원평(元坪) 석운(石雲)이 사람을 보내 조보(朝報)를 보냈다. 초8일 응제(應製)에서 240인을 뽑았는데, 대과(大科) 9인, 진사(進士) 67인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우수(優數)로 뽑았다. 12일 응제(應製)에서 대과(大科) 2인을 뽑았고 진사(進士) 초시(初試)도 많이 뽑았다. 17일은 문무응제(文武應製)였고, 19일은 갑술생 응제(甲戌生應製)였다. 조관(朝官)과 사서(士庶) 81세 이상에게는 모두 가자(加資)하고, 서민(庶民) 21세에게는 모두 비단을 하사하였다. 또 큰비가 내렸다. 어성집[魚聖執, 魚允中], 이봉조[李鳳藻, 李建昌]가 모두 석방되었다. 12일 응제에서 족질(族侄) 유홍(裕弘)이 대과(大科)에 이름을 올렸고, 석운(石雲)의 차자(次子) 중평(仲平)이 소과(小科) 초시(初試)에 이름을 올렸다. 계방(桂坊)의 자제(子弟)로 장차 진사방(進士榜)의 끝에 이름을 올릴 것이니, 기쁘고 기쁘다.

20일 丁卯. 맑았다.

이후창(李厚昌) 민정( 敏鼎), 현순좌(玄舜佐), 박순흥(朴順興)이 왔다. 석수(石手) 2인이 와서 새집 온돌로 쓸 돌을 영탑(靈塔) 뒤에서 캤는데, 나도 산에 올라 돌을 캐는 장면을 보았다. 날이 저물어 돌아왔다.

21일 戊辰. 흐리고 비가 왔다.

백거(伯渠), 혜중(惠仲), 흥준(興俊)이 와서 묵었다. 흥중(興仲)이 병에 대해 물으려고 오늘 의원 김남파(金南坡)가 올 것이라고 하여 이곳에 와서 기다렸는데, 오늘은 김의원이 비에 막혀 오지 않았다. 죽동(竹洞) 인택여(印澤如)가 서울에서 내려와 서울 편지를 전해 주었다. 14일에 쓴 편지이다. 재동에서 내리는 편지는 없었다. 가평(加平)의 부음 편지를 보았다. 사관(査官) 이붕여(李鵬汝)가 초 4일에 사망하였다고 하니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다.

22일 己巳. 맑고 바람이 불었다.

박원택(朴元澤)이 의원 김남파(金南坡)와 함께 와서 나를 진맥하고 가감육미탕(加減六味湯)을 처방하였고, 천구(千駒) 내외를 진맥하고는 천구에게는 회향탕(茴香湯)을 처방하고 새댁[新宅]에게는 금궤당귀산(金櫃當歸散)을 처방하였다. 황혜중(黃惠仲), 인도숙(印道叔)이 모두 와서 병을 묻고 약처방을 받았다. 김희경(金羲卿), 한경(漢卿),안우경(安雨卿), 홍생 봉유(洪生 鳳裕)가 왔다. 세경(世卿),은경(殷卿)이 와서 묵었다. 시묘동(侍墓洞) 조참봉(趙參奉) 집에서 철쭉 한 그루를 얻어 뜰 가에 심었다. 백거(伯渠) 형제가 갔다.

23일 庚午. 맑고 바람이 불었다.

새벽에 어머니 제사를 지냈다. 이후창(李厚昌), 김한경(金漢卿)이 왔다. 선편(船便)으로 보낸 문창(門窓)과 용품이 구만포(九萬浦)에 있었는데, 이설도(李雪道)의 아들이 궁답(宮畓) 작인(作人)에게 지워서 가져왔다.

24일 辛未. 맑고 바람이 불었다.

목수(木手) 4인이 와서 새집 단장 작업을 하였다. 광록(光祿)이 구만포(九萬浦)에 있던 나머지 용품을 가지고 왔다. 인탁여(印卓如), 당진(唐津) 호생 형찬(扈生亨贊), 장생 흥세(張生興世), 장생 종림(張生鍾林)이 왔다. 촌민(村民) 이순만(李順萬)이 돌림병으로 죽어 매우 비통하였다.

26일 癸酉. 맑고 바람이 불었다.

집 아이가 나귀를 타고 서울로 갔다. 삼봉(三鳳), 도성(道成)이 따라 갔다. 세경(世卿)이 왔다. 김일관(金日觀)이 왔다. 나는 이후창(李厚昌)에게 나귀를 빌려 원평(元坪) 김석운(金石雲)을 방문하여 그의 둘째 아들 중평(仲平)의 소성(小成)을 축하하였다. 일관(日觀)이 따라갔다. 원평(元坪)에 이르자, 주인은 편지로 도은(陶隱)을 초대하였다. 또 나에게 묵고 가기를 강권하여 나귀를 보내고 머물러 잤다.

30일 丁丑. 맑고 바람이 불었다. 청명 한식절(淸明寒食節).

미장이[墁工] 신순길(申順吉)이 왔다. 곧 흙일을 시작할 것이다.

주석
농가 고용 가절(農家雇傭佳節) 봄 농사철을 맞이해서 머슴에게 잔치를 베푸는 날. 이날 머슴들에게 옷과 담배와 술을 주고 위로하는 행사를 말한다.
조보(朝報) 승정원(承政院)에서 처리한 사항을 매일 아침에 기록하여 반포하는 관보(官報)를 말한다.
가자(加資) 정삼품(正三品)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의 품계(品階)로 추천하는 일을 말한다.
계방(桂坊) 세자를 시위하는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별칭이다.
금궤당귀산(金櫃當歸散) 한의학상의 처방의 하나. 당귀미(當歸尾)를 주재료로 타박상・외상(外傷) 등으로 생긴 어혈(瘀血)을 치료하도록 처방된 것이다. 가루 또는 탕약으로 복용하며, 당귀미 이외에도 적작약(赤芍藥)・소목(蘇木)・홍화(紅花) 등의 재료가 이 약을 만드는 데 쓰인다. 기력이 약해 졌을 때 좋은 효과를 주는 약이기도 하다.
궁답(宮畓) 작인(作人) 궁방전의 소작인. 왕자 군과 공주 옹주 등에게 생활비를 대거나 제사 경비를 대기 위해 궁방전(宮房田)을 곳곳에 두고 조세 대신 도조를 받았다. 궁방전에는 농사를 짓는 작인을 두었다.
소성(小成) 과거의 소과(小科) 가운데에서 초시(初試)나 종시(終試)에 합격하던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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