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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면양행견일기
일러두기

초 1일 癸卯. 눈이 온 후 맑고 추웠다.

외서(外署)에 나아갔다. 고쿠분[國分]이 외서에 와서 담화하였다. 심영 편에 집 아이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고, 평기(坪基) 이생(李甥)의 편지도 보았다.

초 3일 乙巳. 맑고 추웠다.

외서(外署)에 나아갔다. 일본 공관(公館)으로 가서 담화하였다. 은경(殷卿)이 심영에서 와 집 아이가 보낸 편지를 보았다.

초 5일 丁未. 맑았다.

외서(外署)에서 일을 보았다. 이노우에(井上) 공사(公使)에게 의정부로 오라고 명령하여 각 대신(大臣), 협판(協辦)과 함께 의정부와 각 아문 규칙에 대해 회의하였다. 해가 저물어 파하였다.

초 6일 戊申. 맑았다. 오늘은 외국의 새해 첫날이다.

은산(殷山) 수령인 친구 이순교(李舜敎)가 부임하는 편에 기영에 올리는 19번째 편지를 부쳤다. 기영 파발 편에 6번째로 내리신 편지를 받았다. 완백[完伯, 전라 감사 李道宰]의 전보를 보았는데, 심영 병대가 김개남[金開男, 男은 南의 오식]을 태인(泰仁) 땅에서 생포하였다고 하였다. 이 적도는 매우 사납고 방자하여 많은 장리(長吏)들이 피살되었는데, 지금 비로소 체포하여 매우 기쁘다.

초 7일 己酉. 맑았다.

외서(外署)에서 일을 보았다. 의정부로 가서 여러 대신과 함께 예궐하여 수정전(修政殿)에 모여 각 아문의 주본(奏本)을 올렸다. 대개 3일 간격으로 예궐하여 상주하는 일과 하루 전에 의정부에 모여 회의하는 일은 새로 정한 규정이다. 임금님의 안위[上候]가 풍화(風火)에 시달려 아직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친림하시지 못하였다. 김적 개남[金賊介男, 介男은 開南]이 생포되었지만 다른 우환이 있을까 염려하여 즉시 참수하여 순무영(巡撫營)으로 상송(上送)한다고 한다.

초 8일 庚戌. 맑고 매우 추웠다.

외서에서 일을 보았다. 고쿠분(國分)이 와서 담화하였다. 심영 편에 집 아이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기영 파발이 돌아가는 편에 20번째 올리는 편지를 부쳤다.

초 9일 辛亥. 맑고 추웠다.

오늘은 돌아가신 아버님의 기제사인데도 가서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여 슬픔과 그리움이 더욱 심하였다. 외서에서 일을 보다가 다시 의정부로 가서 대신과 회의를 하였다.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도 와서 담화하였다.

초 10일 壬子. 맑고 추웠다.

좌랑(佐郞)이 구수(龜壽)의 혼사(婚事) 때문에 귀천(歸川)으로 돌아갔다. 혼택(婚擇)은 13일이고 신부(新婦)는 심상락(沈相洛)의 딸로서, 고우(故友)인 지중(志仲)의 종손녀(從孫女)이다. 외서(外署)에서 일을 보다가 다시 의정부로 가서 대신과 회의하였다. 정본당(政本堂) 옛 승정원으로 가서 각 아문의 주본(奏本)을 올렸다. 총리(總理), 탁지(度支)와 함께 집경당(緝敬堂)으로 가서 석파 어른[石坡丈, 흥선대원군]을 배알하고 친우 석보국(石輔國)을 방문하였다.

11일 癸巳. 맑고 춥다가 조금 누그러졌다.

외서에서 일을 보았다. 심영 편에 집 아이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완영[完營, 전라감영] 편에 완백(完伯)과 황중군[黃中軍, 헌주]의 편지를 보았다.

12일 甲寅. 흐리다가 조금 눈이 왔다.

오늘은 대군주(大君主)가 태묘(太廟)로 가 서고문(誓告文)을 낭독하는 날이어서 각 아문의 대신이 배종(陪從)하였다. 예가 끝나고 환궁하였다. 심영(沁營) 편에 집 아이가 보낸 편지를 보았다.

13일 乙卯. 흐렸다.

오늘은 대군주(大君主)가 태사(太社)에 가 서고문(誓告文)을 낭독하는 날이다. 각 아문의 대신을 불러 서고(誓告)한다는 뜻을 중외에 반포하는데, 각 대신이 서명하고 명을 받들고 물러났다. 시직(侍直)이 강화(江華)에서 왔다.

14일 丙辰. 맑았다.

외서에서 일을 보았다. 기영(箕營) 장계(狀啓) 편에 초 5일에 쓰신 7번째 현자[第七玄] 편지를 받았다. 일본 공사관이 주연에 초빙하여 다녀왔다.

15일 丁巳. 맑고 추웠다.

외서에서 일을 보았다. 의정부 모임에 갔다.

16일 戊午. 흐리고 추웠는데 매우 혹독하였다.

외서에서 일을 보다가 의정부 모임에 갔다. 여러 대신들이 수정전(修政殿)으로 갔다. 상주한 일에 대해서는 임금께서 친림하여 재가하셨다. 오늘 상주한 것은 모두 자주독립에 관한 일었다. 기영 관노(官奴)가 돌아가는 편에 1번째 현자[第一玄] 편지를 부쳤다.

17일 己未. 맑고 혹독하게 추웠다.

외서에서 일을 보다가 의정부로 갔다. 여러 대신과 이노우에 공사(公使)가 와서, 차관(借款)에 대해 담화하였다. 밤 7시 무렵에 외서에서 연회를 열고, 각국 공사를 초청하였다. 각국의 공・영사(公領事)들이 러시아 공사관과 선약이 있었기 때문에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다만 일본인 스기무라 후카시(杉村濬) 등 5인만이 와서 모임에 참가하였다.

18일 庚申. 혹독하게 추웠다.

오늘 러시아의 원단(元旦)이어서 러시아 공사관에 축하하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외서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감기로 편치 않아 밤에 패독산(敗毒散)을 복용하였다.

19일 辛酉. 맑고 혹독하게 추웠다.

나는 감기로 몸져누워 고통스러웠다. 오늘 또 패독산(敗毒散)을 복용하였고, 밤에는 금계랍(金鷄蠟)을 복용하였다.

20일 壬戌. 맑고 혹독하게 추웠다.

병세가 어제와 같아 아침에 금계랍(金鷄蠟)을 복용하였고, 저녁에 패독산(敗毒散)을 복용하였다. 배지(陪持) 편에 기영의 8번째 현자[第八玄] 편지를 받고, 즉시 2번째 현자[第二玄] 편지를 부쳤다.

21일 癸亥. 맑다가 저물 무렵에 점차 눈이 왔다.

밤에 풍한[風寒, 감기] 증세가 어제와 같아 밤에 패독산을 복용하였다. 어제 귀천(歸川)에서 온 인편에 구수(龜壽)가 부인을 맞는 예를 행하였는데, 새색시가 마음에 맞는다는 말을 듣고 기쁘고 기뻤다.

22일 甲子. 맑았지만 혹독하게 추웠다.

병세가 어제와 같아 밤에 자부지황탕(磁附地黃湯)을 복용하였다.

23일 乙丑. 맑았지만 혹독하게 추웠다.

병세가 전에 비해 조금 나았다. 가평(加平) 이실(李室)의 편지가 와서 답서를 보냈다. 지황탕(地黃湯)을 복용하였다.

24일 丙寅. 맑았지만 혹독하게 추웠다.

병세가 또 점점 더해져 밤에 지황탕(地黃湯)을 복용하였다. 나는 내직과 외직을 같이 겸하여 볼 수 없다는 뜻으로, 사직 상소를 올렸다.

25일 丁卯. 맑고 혹독하게 추웠다. 대한절(大寒節).

병세가 조금 나아서 오늘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어제 상소에 대해 비지(批旨)를 받았는데, 단지 심류[沁留, 강화유수]에서 체직하라는 것이었다.

26일 戊辰. 맑고 혹독하게 추웠다.

병세가 조금 나아져 단삼삼전전탕(單蔘三錢煎湯)을 복용하였다. 종묘춘향대제(宗廟春享大祭) 제관(祭官)은 병으로 면직되었다.

27일 己巳. 맑고 혹독하게 추웠다. 밤에 눈이 왔는데 두께가 1마디에 조금 미치지 못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낯을 씻고 빗질을 하였다. 인삼전오전중(人蔘煎五錢重)을 복용하였다. 심영(沁營) 편에 홍실(洪室)의 편지를 보았다. 그 사이에 아들 숙(淑)이 죽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폐질을 지니고 있던 아이로 슬프고 애석하다.

28일 庚午. 맑고 추웠다.

외서에서 일을 보았다. 집 아이가 심영으로 갔다.

29일 辛未. 맑고 추웠다.

외서에서 일을 보았다. 기영에서 18일에 보내신 8번째 현자 편지를 받았다.

30일 壬申. 맑았다.

예궐하여 섣달 그믐날 저녁 문안[除夕問安]을 드렸다. 내일가는 기영 배지(陪持)편에 3번째 현자 편지를 부쳤다.

주석
고쿠분[國分]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를 말한다.
심영 병대가 김개남[金開男, 男은 南의 오식]을 태인(泰仁) 땅에서 생포 이도재는 전라감사로 부임하면서 강화도 수비병인 강화진무영의 중군 황헌주와 그들 군사를 대동했다. 황헌주가 지휘하는 군사가 김개남을 잡아 전주 서교장에서 처형하고 머리를 서울로 올려와 조리돌렸다.
장리(長吏) 수령(守令) 등 지방관(地方官)을 달리 이르는 말이다.
풍화(風火) 병의 원인이 되는 풍기(風氣)와 화기(火氣)를 말한다.
혼택(婚擇) 혼인하기에 좋은 날을 가리는 것을 말한다.
태사(太社) 조선조 때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토지의 신과 오곡의 신에 제사 지내는 사직단을 말한다.
7번째 현자[第七玄] 편지의 횟수를 천(天)지(地)현(玄)의 글자를 붙여 세고 있다. 7번째 현자[第七玄]는 37번째 편지를 뜻한다.
패독산(敗毒散) 강호리, 따두릅, 시호 따위를 넣어서 달여 만드는 탕약. 감기와 몸살에 쓴다.
배지(陪持) 기마로 문서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을 말한다.
자부지황탕(磁附地黃湯) 지황탕(地黃湯)은 육미탕(六味湯)이라고도 하고 숙지황, 산약, 산수유, 백복령, 목단피, 택사 따위를 넣어서 달여 만드는 보약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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