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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남씨가 갑자기 남원으로 가고 국군이 따라가지 않은 이유[南氏之忽赴南原及鞠君不隨往之由]

국군(鞠君, 국기춘)이 담양(潭陽)에 도착하였다. 그는 서기의 임무를 나에게 일임하고 몇 일에 한 번씩 나를 보러 왔다. 나는 오직 말을 타고 치달리는 것을 일로 삼고 지냈는데, 이것은 대개 남씨를 점점 멀리 하려 한 것이다. 하루는 나에게 그의 첩의 집에서 술을 마실 것을 청하였다.[그의 첩은 초옥(楚玉)이다.] 나이가 겨우 10세로 골격이 조금 컸다. 9세 때부터 첩으로 삼고 있었는데, 모든 일에 능하다고 하니 이 역시 웃음꺼리로 삼을만 했다. 나에게 이르기를, “개남이 오합지졸과 좀도둑 같은 장수로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패망할 것이네. 남씨 무리도 오랫동안 담양에 있다가는 장차 옥석의 구분이 없이 모두 타버릴 것이니 어찌 하면 되겠나? 나도 남씨의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고심해보아도 계책이 없으니 밝은 가르침을 듣고 싶네”라고 하였다. 내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좋은 술을 많이 사온다면 절로 그대를 구할 방법이 있을 것이오”라고 하고는 여러 가지 계책을 가르쳐주고는 웃으며 헤어졌다.
다음 날, 내가 남씨에게 말하기를, “이번 대접주가 오라고 하는데도 공이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으니 뒷날 무슨 말로 책임을 면하시겠소? 남원은 대접주가 근거지로 삼는 곳으로, 나머지 무리들은 아직도 남원을 수비하고 있으며 운봉(雲峰)의 방수군(防守軍)이 때때로 와서 침입하고 있으니, 공은 속히 남원으로 가서 성을 잘 지키고 접주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린다면 또한 옳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남씨는 “옳다. 옳다”라고 하고는 곧바로 국군(鞠君)을 불러 상의하였다. 그러자 국군은 입에 가득 훌륭하다고 칭찬하고는 3일 안으로 길을 떠날 것을 약속하였다. 국(鞠)도 집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꾸렸다.
다음날 국군(鞠君)이 진문(陣門) 밖으로 말을 달리다가 갑자기 말에서 떨어져 팔을 크게 다쳐 들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가서 보고, 이에 황치자(黃梔子)로 떡을 만들어 붙였다. 하루가 지나자 온 팔이 푸른색으로 물들어 완연히 정말 다친 사람과 같았다. 내가 남씨를 이끌고 가서 보니, 남씨도 크게 놀라 한탄을 하였다. 국군이 몸을 돌려 신음을 하며 말하기를, “팔이 비록 부러지기는 했지만 나는 반드시 따라가겠소”라고 하였다. 남씨가 안심을 하고 다음날 출발하였다. 나는 국의 말을 타고 국은 나의 가마를 탔는데, 나와 남씨가 선진(先陣)이 되어 가고 국은 후군(後軍)에 섞어 천천히 왔다.
오후에 순창(淳昌) 복흥치(福興峙)를 넘어 쉬면서 술을 마시며 후군(後軍)을 기다렸다. 그런데 홀연히 비마(飛馬)가 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국군(鞠君)이 도중에 갑자기 병이 나서 거의 위급한 지경입니다”라고 하였다. 남씨가 크게 놀라 말을 잃고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말하기를, “그 사람이 매번 첩의 집에서 잤는데 어제 밤에도 기어코 작별하는 거조가 있었을 것이니, 이것은 반드시 상한(傷寒, 과도한 성행위로 생기는 병)이 틀림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곧바로 말을 달려 가보니, 눈을 뜨고 다리를 떨면서 헐떡이며 말을 하지 못하였다. 내가 점주(店主)를 불러 돼지 오줌을 가지고 오게 하여 물과 섞어 가라앉힌 다음 큰 사발 하나를 가지고 와서 마시게 했다. 많은 군인들이 둘러싸고 보고 있어 마시는 것을 꺼렸지만, 마시자마자 곧바로 토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자네는 이제 사는 것은 걱정이 없겠네”라고 하였다. 여러 군대를 먼저 보내고 내가 뒤에 떨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면서 내가 말하기를, “한 사발 오줌국이 호랑이 주둥이에서 자네를 구해 주었네. 오줌 값이 귀하니 뒷날 잘 갚게나”라고 하였다. 좋아지자 나 역시 쫓아갔다.
드디어 가마를 바꾸어 타고 왔다. 남씨를 보고 말하기를, “과연 그것은 상한(傷寒)이었소. 내가 좋은 약으로 투여를 했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오. 그렇지만 그로 하여금 집으로 되돌아가 조리하게 하고 수일 뒤에 곧바로 남원으로 오도록 해야 할 것이오”라고 하였다. 남씨도 탄식함을 이기지 못하고 의심없이 믿었으니, 우습다. 이 역시 한바탕 연극으로 생각하면 마치 꿈속 같다.

주석
운봉(雲峰)의 방수군(防守軍) 박봉양이 이끄는 민보군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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