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무진 [二十二日 戊辰]
대내에 전보하기를, “21일에 영광에 군사가 도착하였는데 심영의 병사들이 19일에 웅연(熊淵)에 도착하여 정박하였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함평과의 거리가 조금 멀기 때문에 법성포에서 육지에 내리는 것으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지금 함평의 보고를 보니 저들은 경군이 추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제 미시(未時, 오후 1∼3시) 경에 또 흩어져 장성·나주 등지로 향하였다고 합니다. 방금 2개 정예부대를 선발하여 파견하였는데 저들이 갑자기 모였다가 흩어지고 도로가 험하고 좁아 대포를 운반하기 어렵고 여러 군사들도 추격하기 어렵습니다. 비록 각 읍에 거듭 명하여 특별히 방어하게 하였으나 토병들은 제대로 방어하지는 못합니다. 저들이 흩어져 영남으로 도주할 염려가 있는 듯하니 걱정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정부로부터 온 전보에 이르기를, “완백과 초토사는 함께 보라. 위문하는 선전관이 내려가기를 기다려라. 금액 2천 냥을 준비하여 갔다. 어제 진중(陣中)에 전교를 내렸으니 그 말뜻을 한문과 언문으로 번역하여 등사해서 저들을 효유하기 바란다. 만약 물러가지 않으면 이는 반란의 마음으로 시위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한 쪽으로 살 길을 열어줄 것임을 전하여 깨우쳐 주라. 저들의 답하는 바가 어떠한지 문초한 것을 받들어 곧 올려 보내라. 경군은 오늘 어느 곳에 있는가? 또한 알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