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초 8일 갑신 [初八日 甲申]
공사청에 전보하기를, “적도들이 싸움에서 여러 번 패한 이후로 첨예한 기세가 꺾여 비록 호소하는 정상이 있고 계속 귀화하기를 애걸하지만 그 정형은 헤아릴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또 적도가 매우 많고 성첩은 견고하고 완전하니 적을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좀더 생각을 해야 할 무렵에, 적도들이 동문과 북문의 두 문을 따라 도주하는 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일 사시 경에 300여 개의 사다리를 만들어 성 밖에 가까이 세우고 병사들로 하여금 일제히 성을 넘어서 남문을 활짝 열게 하였습니다.
군사를 거느리고 성안으로 들어가 한편으로는 공격하고, 한편으로는 도망치는 자를 쫓아갈 때에 적도들이 동문과 북문을 나와 머리를 싸매고 사방으로 흩어지니 모두 실탄에 맞아 부상을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일일이 잡아들이라는 뜻으로 특별히 각 읍에 명령하였고 또 몇 부대의 병력을 파견하여 보내서 뒤를 쫓아 섬멸할 계획입니다.
지난번에 잃어버린 극로백 1좌와 회선포 1좌, 실탄과 각 읍에서 탈취한 군기(軍器)인 총·창 1,000여 자루와 불랑기(佛狼機)대포 24좌와 연환(鉛丸) 10두, 화약 1,000여 근과 그 나머지 활·화살·갑옷·투구·군도·도끼는 아울러 모두 걷어 모았습니다.
완백에게 공문을 보내어 날짜를 정하여 속히 부임하게 하고 전주 판관도 곧 돌아와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순변사가 도착하지 않아 청나라 군사가 진주하면 음식의 접대가 극히 어려우니 다시 처분이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내서로부터 어제의 전보에 하답하기를, “보내온 전보의 뜻은 잘 알았다. 사다리로 성을 오르는 일은 매우 경솔한 것이었다. 적의 정세를 상세히 탐지하고 성문을 몰래 격파하여 성을 회복하라. 기영의 장병이 곧 도착할 것이니 힘을 합쳐 하루빨리 섬멸하고 불을 지른 뒤에 청군이 전진하는 일이 없도록 속히 도모하라. 8일 해시(亥時, 오후 9∼11시)”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