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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갑오년 3월 초9일[甲午三月初九日]

의정부 초기(草記)에, “역적 김옥균(金玉均)의 시신이 경강(京江)에 도착하여 시신에 험증(驗証)을 할 일은 경조(京兆, 한성부)와 추조(秋曹, 형조)로 하여금 법전을 살펴 당일 거행할 일입니다”하니, 윤허하였다. ≪홍종우(洪鍾宇)가 김옥균을 청나라 연태(烟台)에서 총살하고 그의 시신을 인천까지 배로 운반하여 경강에 이르렀기 때문에 계문(啓聞)한 것임≫
양사(兩司)가 합계하여 승정원 앞에서 아뢰길, “역적 옥균이 이미 죽었다고 하여 처벌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 서둘러 이괄(李适)과 신치운(申致雲)에 적용했던 법[适雲之律]으로 시행하소서”라고 하였다. 비답하기를 “공분(公憤)이 있어 이러한 청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아뢴대로 하라”하였다. 시임・원임대신의 연차(聯箚)에 대하여 비답하시기를, “지금 경들의 간절함은 회음(沬飮)의 징토 의리가 있어 그런 말이 있는 것이니, 당연하다. 또한 귀신과 사람이 함께 분노하고 여론이 더욱 들끓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내버려 둘 수 없어서 그런 것이다. 청한 대로 시행하라”하였다.

옥당(玉堂, 홍문관)의 연차(聯箚)에 대하여 비답하시기를, “여러 사람들의 분노가 더욱 격동하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이미 대계(臺啓)의 비답에 설유하였다”라고 하였다. 의금부 초기에, “역적 옥균은 때를 기다릴 것도 없이 능지처참하고 게다가 이괄과 신치운의 사례로 시행할 일입니다”하니 윤허하였다. 또 초기에, “대역부도한 죄인 옥균은 이미 정형(正刑)을 받았습니다. 응당 연좌되는 모든 사람은 일일이 조사해 거행하고, 집안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籍沒家産], 집을 부수고 연못을 만드는 것[破家瀦澤] 등은 각각 해당 관사에서 거행하도록 할 일입니다”하니, 윤허하였다.

3월 초10일[初十日]

양사의 합계(合啓) 가운데 ‘영식영효옥균광범재필등유피(英植永孝玉均光範載弼等惟彼)’ 다음의 ‘영식옥균(英植玉均)’ 4자를 지우고, 양사의 새 합계[新啓] 가운데 ‘거행(擧行)’까지의 42자를 지우고, 그 다음의 45자도 지우고, ‘제적(諸賊)’ 다음에 ‘극청(亟請)’ 2자는 첩입하였다.

3월 23일[二十三日]

예조 초기에, “갑신 흉역(甲申凶逆, 갑신정변)은 실로 전에 없었던 변란이었습니다. 매우 흉측한 도적들이 아직 완전히 토벌되지 못했더라도 다행히 황천(皇天)과 조종(祖宗)께서 묵묵히 도우시고 백성을 안정시켜 반역의 괴수가 이미 굴복하여 정형을 당하였고, 왕법(王法)이 크게 펼쳐져서 귀신과 사람들이 모두 통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는 진실로 국가의 막대한 경사입니다. 종묘와 사직에 고하는 일, 교서를 반포하는 일[頒敎], 전문(箋文)을 올리는 일[進箋], 축하를 펼치는 일[陳賀] 등의 예절은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되니 곧 날을 잡아 거행할 일입니다”하니, 윤허하였다.
또 초기에, “종묘사직과 경모궁(景慕宮, 사도세자의 사당)에 고하는 일, 반교, 진하 등의 길일(吉日)은 4월 27일 오시(午時)가 길하다고 합니다. 이날 때를 정하여 행하고 내일 새벽에 먼저 종묘, 영녕전(永寧殿), 사직단, 경모궁에 제(祭)를 행하고, 오시에 반교와 진하를 행하며, 대전, 왕대비전, 중궁전, 세자궁에 진전과 진하를 행하고, 방물(方物)과 물선(物饍)은 전례에 따라 봉진(封進)할 일입니다. 서울과 지방에 널리 알리고, 전문(箋文)과 반교(頒敎)도 문임(文任)을 선출하도록 할 일입니다”하니, 윤허하였다. ≪예제(藝提, 예문관 제학) 윤용선(尹容善)이 지어 받쳤음≫

3월 26일[二十六日]

의정부 초기에, “최근에 듣자하니 호서, 호남, 영남 등지에서 자주 협잡의 부류들이 무리를 이루어 모여서 멋대로 못된 풍습을 자행하고 쓸데 없이 난동을 부린다고 하는데 이처럼 교화가 미치지 못하는 무리[化外之徒]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대수롭지 않게 처리할 수 없습니다. 삼도(三道)의 도신(道臣, 관찰사)에게 명하여 엄하게 신칙하고 금지하게 하십시오. 만약 고치지 않고 다시 예전과 같은 폐단이 있다면 그 괴수를 잡아서 먼저 효수해 경계하고 뒤에 보고하도록 할 일입니다”하였다.

3월 29일[二十九日]

장위영(壯衛營) 영관(領官) 홍계훈(洪啓勳)을 전라병사에 제수하고 영관을 겸대(兼帶)하여 며칠 안으로 내려가도록 하였다.

주석
청나라 연태(烟台) 홍종우가 김옥균을 암살한 곳은 1894년 3월 28일 청나라 상해 동화양행 객실이었다.
회음(沬飮) 회혈음립(沬血飮立)의 준말. 피로 얼굴을 씻고 마시 듯 결의를 다지는 말로 결의있게 적을 응징하는 것을 말한다. 원문에는 회(沬) 자가 말(沫) 자로 표기되어 있다.
윤허하였다 김옥균의 시체는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어 전국에 효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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