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12월 12일 이른 아침에 갈촌(葛村) 앞 주점(酒店) 김야만(金冶萬)의 여남은 살 먹은 어린 아들이 군수 앞에 편지 1장을 바쳤다. 그 편지에 “김여중(金汝中)·김명중(金明仲) 형제를 일인(日人)의 행차소(行次所)로 압송하라”고 하므로 군수가 들어올 것을 요청하여 들어갔다. 그 때 조반상(朝飯床)이 들어왔으나 밥상을 보지 못하고, 편지로 얼굴을 가리며 한참 만에 편지를 들어 말하기를, “죄가 없으면 상관이 없다”라고 하였더니, 눈물이 옷과 수건에 떨어졌다. 다시 말하기를, “우리나라의 일이면 옥에 갇히는 일도 없게 할 터이나 외국의 법률은 나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우선 옥에 갇혀 있으면 내가 바로 영문(營門)으로 가서 일인(日人) 행차소로 기별을 하여 무사히 석방시킬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갇혀있으라”고 하고 형제를 옥에 가두었다. 그 때에 일본인 대대장(大隊長)이 나주군(羅州郡)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