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경에 접(接)을 돌아보려고 동생과 함께 태인, 임실 등지에 갔었는데, 장석(丈席)으로부터 빨리 올라오라는 편지가 왔다. 유재오(劉載午)씨가 가지고 왔기 때문에 올라가기 위해 시일을 다투어 집으로 돌아오느라 노독(路毒)이 너무 심해 발바닥이 소의 눈깔처럼 되어있었다. 그러나 황공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길을 떠났으며 중도에서 점차로 완쾌되었다. 차차 올라가다가 상주(尙州) 화항(火項)의 이철우(李哲雨)의 집에 묵었고, 다음날에 고대(高垈)의 이팔용(李八龍)의 집에 가서 선생님을 뵈었다. 깊은 산골짝이에 도인(道人) 4∼5채의 집이 있었는데,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참으로 요순(堯舜)의 세상이었다. 구암(龜菴)·송암(松菴),의암(義菴) 등 6∼7명이 옆에서 해월선생님을 모시고 밤낮으로 도리(道理)를 서로 토론하고 있었다. 구암 어른은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詞)를 선생님 앞에서 보며 오자(誤字)와 토를 다시 정하고 교첩(敎帖)을 새로 시작하고 있었다. 2∼3개월 머무르는 동안에 해월선생님께서 도의 진리(眞理)를 간간히 비유를 하여 설명하기를, “이 운수(運數)에서 요순 같은 성인은 몇 사람만이 세상에 드러났고, 그 다음으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같은 성인은 몇 사람만이 세상에 나왔다”고 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