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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정유년(丁酉年, 1897) 2월에 내려가서 각 처에 포교(布敎)하여 날로 더욱 퍼졌다. 3월에 화항(火項) 이철우의 집에 올라가니 해월선생님은 이천(伊川) 앵선동(鶯先洞)으로 옮기시고 구암 어른도 이천 보통리(保通里)로 이사를 하셨다. 이덕현(李德賢)의 하는 말에,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고, 선생님이 하신 분부에, “낙철이 올라오거든 몰래 오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덕현에게 교의 체지(帖紙) 7,000여장을 지워 보통리 구암 어른의 집에 갔더니 주인 권성좌(權聖佐)가 앉아있었다. 밤을 이용하여 앵선동으로 가서 해월선생님을 뵈었더니, 선생님께서는 “믿을 신(信)자를 풀어 보면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니 사람의 말 가운데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을, 그 중에서 옳은 말은 취하고 그른 말은 버리어 거듭 생각하여 마음을 정하라. 한번 작정한 뒤에는 다른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는 글귀를 간간히 외우고 계셨다. 물러나서 보통리 구암 어른의 집에 머물며, 간간히 선생님을 찾아뵙고 분부를 받들어 교첩(敎帖)을 내었다. 4월 5일은 제세(濟世, 최제우)님이 도(道)를 깨우친 날이었다. 해월선생님께서 새벽녘에 분부하시기를, “이 일은 천추(千秋)동안 바뀌지 않을 법이다. 비록 과실(果實) 한 개라도 노인·소년·어린애·속인(俗人)·고인(雇人, 삯꾼)의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나를 향해 자리를 마련해서 지성(至誠)으로 하늘에 고(告)하되, 1월 1일은 새해의 기운을 각기 받는 법이니 지금부터 진리를 아는 두령은 차차 그것을 실행하라”고 하시고 새로 향아설위법(向我設位法)을 마련하셨다.
각 도(道)의 도접주(都接主)와 수접주(首接主)를 새로 정했는데, 나를 전라도 수접주로 임명하셨다. 그 후에 포교를 하러 내려가서 각 접을 순회할 때에 구암 어른의 편지가 도착하였다. 김학종(金學鍾)이 선생님께 아뢰기를, “구암이 낙철에게 8월 절일(節日)의 찬문(饌文)을 바로 거두어 올려 보내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하니, 해월선생님께서 크게 화를 내어 구암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낙철에게 이러 이러하게 편지를 했는가?”라고 하였다. 그래서 구암이 답변하기를, “다른 일이 아니라 안부편지일 뿐입니다. 낙철이 올라온 뒤에 물어 보십시오”라고 하였다는 말씀을 내가 올라간 뒤에 구암 어른께서 웃으면서 하셨다. 그 뒤 곽기룡(郭騎龍)이 올라와서 편지의 안부 말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마음으로 학종의 무고(誣告)를 그르다고 생각하였다. 그 뒤에 학종이 올라왔는데, 해월선생님께서 크게 꾸짖기를, “이는 교인의 행사(行事)가 아니다. 바로 내려가라”고 하시었다. 김학종은 처음에는 구암어른과 서로 상종(相從)했는데, 의암(義菴)에게 붙어 간사한 짓을 하며 의암을 따라다녔다. 김학종이 내려간 지 몇 달 만에 체증(滯症)으로 죽었다.

주석
교의 체지(帖紙) 보통 첩지로 잘못 읽는다. 교단조직의 사령장. 동학농민전쟁 이후 최시형은 경기도 강원도 등지로 잠행하면서 조직 확대에 나섰다. 그리하여 많은 임명장을 발행했다.
향아설위법(向我設位法) 동학에서는 제사 의식을 간소화하고 제수를 차릴 적에 종래의 위치를 바꾸어 주제자 위치를 중심으로 진설하게 했다. 곧 신위보다 인간 중심의 뜻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
찬문(饌文) 제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돈을 가리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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