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경에 해월선생님이 구암 어른과 함께 원주(元州) 전거리(全巨里)로 옮기고 아들 1명을 낳았으나 각 처의 두목들이 전혀 알지 못하게 하셨다. 동생인 낙봉(洛鳳)은 선생님을 모시면서 봉의(鳳儀)를 가르치고 있었고, 나는 구암 어른 집에서 머물렀다. 선생님댁이 구암 어른의 집과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있어 울타리를 통해 왕래하며 선생님을 모셨다. 선생님께서 봉의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네가 인제 단발(斷髮)을 하겠구나. 나야 단발할 것이 무엇 있나”라고 하시면서 “이후로는 갓과 망건이 모두 없어지리라”고 하셨다.
낙봉이 정유년(丁酉年) 설을 쇠러 본가로 내려갈 때에 곽기룡이 올라와서 함께 내려갔다. 그 때에 조정중(趙正重)이 올라왔는데, 채독증(菜毒症)때문에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낙봉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약(仙藥)을 쓰라”하여, 낙봉이 선약을 먹였더니 바로 효과가 있었으나 몇 시간이 아니 되어 다시 죽을 지경이 되면 선약을 먹여 바로 효과가 있었다. 여러 차례 반복을 하며 겨우 내려갔다.
그 때에 홍정삼(洪正三)과 김은우(金銀雨)가 구암어른에게 십전대보탕(十全大輔湯) 2제(劑)를 지어보냈는데, 구암 어른께서 낙봉과 함께 1제씩 먹으려고 하셨다. 낙봉이 이 일을 해월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허락한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낙봉이 이 약을 연(硏)에다가 여러 날 동안 갈았다. 선생님께서 직접 살펴보시고 명(命)하시기를, “깨끗하게 하라”고 여러 차례 분부를 하셨다. 며칠 뒤에 꿀물을 섞어 약을 만들 때에 낙봉에게 분부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약을 먹으며 구암이 어찌하여 약을 복용하는가? 바로 구암을 불러오라”고 하셨다. 구암이 오니, 선생님께서 크게 화를 내며 말씀하시를, “너와 낙봉이 어찌하여 약을 먹는가? 홍정삼과 김은우의 관내(管內)는 모두 약을 먹느냐? 모두 버리라”고 하였다. 좌우에서 모시는 사람들이 황송함을 견디지 못하고 이 약을 모두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