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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
일러두기

하루는 동생 낙봉과 상의하기를, “대선생님에게 식고(食告)를 하고, 해월선생님에게 식고가 없는 것은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대선생님은 천황씨이고 해월선생님은 지황씨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이고 영(靈)도 하나인데, 어찌 식고의 이치가 없겠는가”라고 하니, 낙봉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8월 12일부터 시작하여 식고례(食告禮)를 널리 행하였다.
널리 3암(三菴)의 소식을 알아보았더니, 의암과 구암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부터는 각처의 교인을 막론하고 한 사람도 보지 않고 숨어있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더라도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런데 9월경에 이철우(李哲雨)씨가 구암어른을 대신하여 편지를 해서 은밀히 통보하기를, “9월 9일에 상주(尙州)의 고대(高垈)에서 몰래 도착하여 쌓인 울적한 마음을 풀고 싶다”고 하였다. 그래서 동생 낙봉과 김일서(金一瑞)·곽기룡(郭騎龍)·한명준(韓明俊)과 함께 상주 고대의 이팔용(李八用)집에 갔더니, 한참 뒤에 구암어른께서 이철우와 함께 오셨다. 그 때에 강건회(姜健會)가 마침 도착하여 송아무개의 집에 가서 해월선생님이 형(刑)을 받은 일과 도중(道中)의 일을 서로 말하는데 하늘과 땅이 참담하였다. 강건회가 구암어른을 마주하여 연죽(烟竹)을 함께하며 말하기를, “이 운(運)은 선생님이 떠나가셔서 도(道)에 주장이 없다. 누구를 주장이라 하겠는가? 아무아무도 주장을 하면 주장이 될 수가 있다”고 하고, 스스로 명암(明菴)이라고 하니, 구암어른께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러니 그 불경(不敬)스러움은 눈으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구암어른께서 풍안(風眼)을 벗어 나에게 주시면서 말씀을 하시기를, “여중(汝仲)의 풍안을 어쩔 수 없이 팔아 썼으니 내 풍안을 쓰라”고 하시며 주시기에, 그것을 받고 말씀을 드리기를, “팔거나 사는 것은 일상적인 일인데, 팔아서 썼다고 이렇게 주시니 황송함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라고 하고, 돌려드렸더니 말없이 받으셨다. 다시 아뢰기를, “저의 얕은 생각으로 하늘과 땅은 하나이고 영(靈)도 하나인데, 어찌 대선생님에게는 식고(食告)를 하고 해월선생님에게는 식고를 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온당하지 않으므로 미리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해월선생님에게 식고를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구암어른께서 말씀이 없으셨다.
철우가 은밀히 말하기를, “의암과 송암이 구암에게는, ‘각 처의 교인을 한 사람도 만나지말자’고 하고서는 각 처에 몰래 통보하여 혼자 만나고 구암만 알지 못하게 하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인심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그리고 구암어른이 지목(指目)을 피해 홍천 등지의 주점(酒店) 상방(上房, 주인이 거처하는 방)에 숨어 있다가 근래에 홍천 후곡(後谷)에 집 한 채를 얻어 사시니 한번 함께 가자고 하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몇 사람은 내려가고 구암어른께서 차차 가시고, 나는 이철우씨와 함께 짝을 지어 홍천 후곡으로 가기 위해 사무아취 오치순(吳治順)의 집에 머물다가 다음날 저물 때를 이용하여 후곡의 구암어른 집에 갔다. 며칠을 머물다가 내려와서 차차 널리 포교를 하였다.

주석
식고(食告) 천도교에서 식사를 하기 전에 한울님에게 고하는 것을 말한다. 때로 최제우와 최시형에게 감사를 드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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