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에 망건(網巾) 9개를 사서 동생 낙봉 및 전장섭(全章燮)과 길을 떠나 며칠 뒤에 홍천 후곡(後谷)의 구암어른집에 도착하였다. 구암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낙철이 몇 차례 보낸 얼마의 돈을 모두 합하니 토물(土物) 몇 냥 중(兩重)이 되었다. 이를 유치하였다가 너를 위해 일서(一瑞)를 서울에 보내 폐백물(幣帛物) 5색(五色) 비단 5필을 사서 두었다. 나가서 목욕하고 와서 보아라”고 하셨다. 그래서 목욕을 하고 그것을 보았더니 매우 상품(上品)이었으나 심기가 저절로 편하지 않았다. 구암어른께서 여러 차례 온갖 방법으로 타이르기를, “이번의 설법치제(設法致祭)는 천지신령(天地神靈)과 두 분의 성사(聖師)에게 정성을 바치는 것이니 조금도 의심을 하지 말라”고 하시었다. 하루는 후원(後園)의 밤나무아래 정자아래에서 몰래 타이르기를, “한마음으로 천지신령에게 정성을 다하여, 두 분이 설법치제(設法致祭)하는 자리에서 심법(心法)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것을 알라”고 하셔서 그 분부를 받든 뒤에는 마음이 맑게 갠 하늘과 같았다. 또 다른 하루는 동생 낙봉·김일서·전장섭·최명기(崔鳴基)와 함께 구암어른을 모시고 영남(嶺南) 풍기군(豊基郡) 옛 시장 내 마을의 의암(義菴)댁에 들렀더니, 아무 아무개 교원(敎員)이 기다려서 맞이하였다. 어느 날 밤 예식을 치를 때 제기(祭器) 등의 물건과 예복(禮服) 및 예관(禮冠) 등은 4도주와 5편의장의 범절(凡節)에 전혀 차등이 없고 폐백물로 5색 비단 10필을 사서 가지고 왔다. 나만 5필을 가지고 가서 4도주와 5편의장이 예를 치루고 전수할 때에 나는 구암어른과 함께 몰래 약속한 일이 있어 천지신령과 두 분의 성령(聖靈 )앞에 정성을 바치고 심법(心法)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예를 치르었는데,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마음으로 혼자 기뻐하고 자부할 뿐이었다. 예를 치룬 뒤에 폐백(幣帛)등의 물건을 태우게 하시고 구암어른께서 은밀히 말씀하시기를, “6임(六任)을 골라 정하되 지나치게 한쪽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곽기룡과 김은우를 골라 쓰라”고 하시었다. 그 때에 전장섭은 서증(暑症) 때문에 편안하지 않다고 하였다. 4도주는 김구암·손의암·송암·박춘암이었고, 5편의장은 신택우·이종구·김낙철·홍병기(洪秉箕)·이상옥이었다. 6임(六任)을 겸임하여 교장(敎長)은 신택우, 교수(敎授) 이종구, 도집강(都執綱) 손응삼(孫應三), 집강 김낙철, 대정(大正) 홍병기, 중정(中正) 이상옥이었다. 각기 그 뜻을 말하고 써서 제출하였다. 송암·춘암·신택우·이종구·이상옥·홍병기가 구암어른에게 말하기를, “의암선생과 함께 날을 정해 설법제향(設法祭享)을 치르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니, 구암어른께서 말씀하시기를, “좋다”고 하시었다. 12월경에 그것을 치루기로 약속하고 각기 헤어졌다.
구암어른께서 우리 형제와 김일서·전장섭·최명기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에 해월선생님께서 분부하시기를, ‘훗날에 반드시 10,000냥으로 설법제향하는 일이 있을 터이니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낙철이가 10,000냥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그 돈을 마련한다면 겉모습은 이렇게 이렇게 하지만 내용은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해월선생님의 분부에 부응하라”고 하시었다. 그래서 본가에 와서 여러 친구들에게 전후의 사실을 일일이 설명하였더니, 모두 “좋다”고 하였다. 물러나서 정성을 다해 힘을 모을 때에, 8월경에 서장옥(徐張玉)과 손천민(孫天民)이 청주에서 잡혀 압송되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각 처에서 지목(指目)이 매우 심하여 그 뒤로는 각 처에 흩어져 한사람도 만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