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 23일
양력으로 3월 그믐 경에 염창순과 박해묵이 대도사(大道師)·대례사(大禮師)·대주교(大主敎)를 받들어 모신다는 품고서(稟告書)를 가지고 가서 평안남도 덕천군의 선생님에게 올리겠다고 하고, 가는 길에 개천군(介川郡)의 전보국에서 본 교당으로 전보를 하였다. 박해묵이 그 사유(事由)를 대강 아뢰고 그 품고서를 선생님께 올렸더니, 선생님이 크게 화를 내며 분부하기를, “이러한 대사(大事)를 하려면 수십일 전에 기약하고 또한 지방의 두령과도 상의한 뒤에 할 일인데, 그저께 일을 1,000리가 넘는 곳에 오늘에 와서 보고하니 이것은 품고서가 아니라 명령서이다”라고 하고 바로 물리셨다. 크게 화를 내고 꾸짖기를, “너는 선정(先程)의 자손이 아닌가? 선정의 자손 같으면 이처럼 무례한 일을 하겠는가”라고 하시니, 해묵이 정신없이 사죄하였다. 다시 크게 꾸짖기를, “무도(無道)하고 무례하며 무리(無理)한 일이다”라고 하고, 해묵에게 “너희들의 글씨로 편지를 써서 가지고 가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해묵이 무안하여 자신이 써서 선생님께 아뢰고 다음날 이른 아침에 품고서를 다시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